조선시대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는 것이 오는 것인지 가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고, 하는 일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틀린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그는 처음엔 이들을 믿어도 보고, 능력을 시험해 보고, 일을 맡겨도 보고, 기회를 주기도 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주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점점 지쳐가던 그는 한 가지 이치를 터득했습니다.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 주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뒤로 돌려주고,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면서 재주보다 뜻을 더 중히 여겼다.”
즉, 사람은 각자의 능력과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20여 년간 사람을 대하며 깨달음을 얻게 된 만천명월주인옹의 정체는 바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였습니다.
정조가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은 것은 알맞은 사람을 알맞은 곳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적재적소’라고 표현합니다. 대들보를 두어야 할 위치에 기둥을 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붕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경영과 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인재에게 적절한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조직의 시너지와 성과는 위태로워지겠지요.
▶️ 적재적소는 육성의 문제다
적재적소의 기본적 의미는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다’는 뜻입니다. 많은 조직이 이를 그저 사람을 배치하는 문제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적재적소는 사람이 스스로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설계, 즉 육성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기회를 부여받는가에 따라 개개인의 역량 발현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적재적소는 채용한 인재의 역량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채용한 뒤에는 그가 잘 클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잘 클 수 있는 일이란,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현해 성공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업무를 말합니다.
다양한 기관에서 실시했던 퇴사 및 이직 원인 리서치 결과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다득표를 받는 항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직무와 적합하지 않아서’, ‘조직 문화와 맞지 않아서’는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지요. 좋은 인재를 조직에 데려왔다 하더라도 적합한 직무와 과제를 주지 못하는 경우, 긍정적 관계를 맺을 환경이 아닌 경우,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닌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역량에 알맞은 기회나 환경과의 연결, 즉 적재적소가 잘 실현되지 않으면 좋은 인재가 떠나버리게 되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구성원들을 영입했다 하더라도 적절한 기회를 활용해 성공경험을 쌓으며 성장할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채용의 의미가 반감됩니다. 자연스럽게 조직의 성과와 지속가능성도 낮아지겠지요. 이것은 구성원 개인의 성향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어떤 기회를 주고, 또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조직의 성과는 ‘구성원의 역량이 발현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인재의 탁월함을 보고 선발하더라도, 그 인재가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떤 성공경험을 쌓으며 성장할지에 따라 조직의 미래 성과의 수준이 달라지지요.
“사람을 잘못 뽑았어.” 혹은 “신규 사원이 생각보다 일을 못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채용된 인재의 문제일까요? 실제로는 그의 역량이 발현될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경우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적재적소의 실패는 인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인재의 결을 읽지 못해서 발생한 것입니다.

▶️ 적재적소의 원칙, '5는 5대로, 10은 10대로'
좋은 인재에게 적절한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면 자연스레 성과와 성장이 따라오리라 으레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으로 짐작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이를 조직에 잘 활용하려면 먼저 개인이 가진 역량을 천천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역량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보유역량’과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현되는 ‘발현역량’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보유역량을 100% 발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주말에 혼자 동네에서 러닝을 하는 것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뛰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생존의 위협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에너지를 아끼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유전적 요소를 가진 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보유역량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발현역량은 보유역량과 달리 원하는 가치, 목표, 상황, 동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사람의 역량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지요.
보유역량이 ‘개인이 발현할 수 있는 최대치’라면, 발현역량은 그 최소치와 최대치 사이의 범위에서 가변적으로 나타납니다. 그 발현치의 변화폭을 결정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과 내면의 의지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의지에 따라 긍정성, 적극성, 전략성, 성실성 등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보유역량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해야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5는 5대로, 10은 10대로”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보유역량을 5만큼 가진 사람이 5의 역량을 모두 발현할 수 있게, 10 만큼의 보유역량을 가진 사람이 10의 역량을 발현하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이 바로 ‘적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돕고, 잘 성장하고 싶다는 동기를 자극하며, 그 동기를 실현해 줄 기회와 역할을 주는 것이지요. 적소는 사람의 결이 꽃피울 수 있는 자리이자, 그의 동기를 촉발시키고 몰입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단순히 구성원의 배치 문제를 넘어, 어떻게 성공경험을 만들어 성장시키느냐라는 고민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 육성의 핵심, 적재적소
구성원은 알맞은 환경과 기회를 통해 성공경험을 쌓을 수 있을 때 활발하게 성장합니다. 역량이 최대치로 발현되면 성과를 만들고, 이는 성공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이 성공경험이 쌓여 다시 성장의 동력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적재적소는 구성원 성장을 위한 선순환의 시작점이자 육성의 기본입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과 기회를 제공해야 할까요? 사람은 보유역량만으로 성과를 내지 않습니다. 환경과 기회가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역량을 최대치로 발현하며 성과를 만듭니다. 같은 보유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떤 조직 문화에 있는가, 어떤 업무를 맡는가, 누구와 협업하는가 등에 따라 실제로 발현되는 역량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적재적소는 그저 ‘알맞은 자리 배치하기’가 아니라 ‘역량 발현을 위한 조건을 설계하는 일’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보유역량이 10인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서 10의 역량을 발현하지만, 다른 사람은 자신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4 정도의 역량만 발현합니다. 보유역량이 동일하더라도 환경과 역할, 기회에 따라 성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죠.
더 중요한 것은 역량 발현 수준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보유역량이 5인 사람이 4를 발현한다면 자기 역량의 80%를 쓰는 것이고, 보유 역량이 10인 사람이 4를 발현한다면 40%만 쓰는 것입니다. 발현치는 같지만 전자가 훨씬 더 성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량을 최대치로 발현하면 성과를 만들고, 이는 성공경험으로 이어지며, 성공경험이 쌓여 성장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김연아, 손흥민처럼 키울 수 없고, 꼭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5의 역량을 가진 사람은 5의 역량 모두를, 10의 역량을 가진 사람은 10의 역량 모두를 발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구성원이 가진 역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다면 반드시 1등이 되지 않더라도 성공경험을 통해 스스로 최상의 삶을 향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상이한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더 나음’을 추구하는 욕망은 똑같이 주어집니다. 역량이 잘 발현될 수 있는 조건, 즉 적재적소의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 성공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육성의 핵심입니다.
▶️ 적재적소를 통한 육성 프로세스 3단계
적재적소를 통한 육성은 긍정적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이 최대한 발현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역량이 최대한 발현되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 더 나은 구성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조직 내에서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육성 환경을 조성하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의 현재 역량 수준에 맞는 역할과 기회를 지속적으로 설계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직함을 달아주거나 직무를 배치하기보다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결을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적재적소를 기반으로 육성 프로세스를 설계할 때는 구성원을 이해하고, 기회를 주고, 성장하는 세 단계의 프로세스를 기본으로 두어야 합니다.

첫 번째, 주기적으로 역량진단을 실시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성장을 도우려면 먼저 각자가 어떤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조직 환경에서 그 역량을 얼마나 발현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역량진단은 ‘이 사람이 얼마나 유능한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환경에서 어느 수준으로 역량을 발휘해 조직 시너지에 기여하는가’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입니다.
주기적인 역량진단을 통해 각 구성원에게 어떤 환경과 기회를 제공해야 역량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진단 결과는 현 상태의 점검을 넘어, 구성원에게 맞는 최적의 성장 환경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두 번째, 진단 결과를 활용하여 역량이 잘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핵심은 앞 단계에서 파악한 각자의 역량 수준을 고려하여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목표와 역할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원이 ‘최선을 다해 도전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큰 기회’라고 느낄 때 비로소 역량을 최대한 발현하며 성장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업무를 잘 수행한 경우, 그다음에는 좀 더 어려운 업무를 주는 식으로 업무 난도를 높여가며 역량을 최대치로 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업무를 찾는 것이죠. 구성원 내면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꽃을 피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지속적인 성장면담과 코칭을 통해 구성원의 역량 발현을 지원해야 합니다. 환경과 기회를 제공한 후에는 구성원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역량을 발현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다음 성장 단계로 연결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면담을 통한 코칭과 피드백입니다.
면담 과정에서 구성원이 타인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어떻게 전략을 수립했는지 등을 경청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코칭과 피드백을 제공하며 내면의 동기를 강화하고 더 큰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성과역량이 높은 올바른 인재를 뽑아 역량이 최대한 발현될 기회를 주는 것, 즉 적재적소는 사람경영의 출발점이자 구성원 성장을 위한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