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채용으로 가는 길
: 차별과 편향을 없애는 핵심은 역량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세계적인 명문 축구단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계속 패하던 다른 팀들이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거 아니냐’며 농담으로 만들어낸 말입니다. 너무 강팀을 만나 질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넋두리인 셈이죠. 이 표현은 공정성에 의심이 드는 상황에서 쓰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기에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채용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겠지요.
채용은 모든 인사의 출발점이자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가르는 첫 단계입니다. 마치 강의 상류가 오염되면 점차 강 전체가 오염되듯이, 채용이 투명하지 못하면 조직도 병이 들지요. 구성원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채용한다는 것은 조직 스스로 생존과 발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채용 프로세스에서 어떠한 차별이나 편향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원칙입니다
▶️ 공정한 채용, 어디까지 왔을까?
수년 전, 중앙정부부처 및 지자체 산하 모든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되었습니다. 채용절차법 개정으로 직무 수행과 관계없는 개인정보를 요구하거나 수집하는 행위가 금지되었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고용 과정에서 성차별적 대우를 받은 이들의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있었습니다. 2026년 2월, 채용 과정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지원자를 차별했을 때의 처벌 규정이 담긴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채용의 공정성을 강조했습니다.
채용의 공정성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는 활발하지만, 실제로 가야 할 길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일부의 의식 부족도 문제지만, 채용 절차를 정비하는 비용에 대한 부담, 의도하지 않은 간접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의 모호함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구직자도 여전히 채용의 공정성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합니다. ‘채용 인원, 평가 기준 등을 공개하지 않아서’, ‘채용 청탁 등 비리가 있을 것 같아서’, ‘성별 등 바꿀 수 없는 요소에 대한 차별이 여전해서’, ‘합격자를 비공개로 발표해서’ 등이 대표적 이유입니다.
▶️ ‘공정한‘ 채용은 ‘브랜딩‘ 전략이다

채용의 공정성
채용의 공정성은 사회적 약속이자 기업의 존립을 위한 필수 가치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채용의 공정성 확보는 단순한 윤리적 의무나 배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정한 채용은 결국 해당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실질적인 경영 성과를 연결하는 중요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는, 채용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인재들의 가치관 변화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인재들은 기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가치관과 조직의 지향점이 일치하는지를 엄격히 따집니다. 특히 그 어느 세대보다 공정과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관행에 대해서는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현합니다.
따라서 공정 채용의 도입은 단순히 지원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유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채용 브랜딩’으로 연결됩니다. 공정함과 평등함을 지향하고 윤리적 채용을 선도한다는 이미지는 잠재적 지원자들에게 강력한 신뢰를 주지요.
결국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좋은 기업’이라는 평판을 넘어 ‘실력 있는 인재들이 믿고 지원하고 싶은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HR의 핵심 전략입니다.
▶️‘공정한‘ 채용은 곧 ‘정확한‘ 채용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공정성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 요소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정한 채용은 기회의 평등을 넘어 ‘선발의 정확성’을 확보할 때 완성됩니다. 즉, 기업이 원하는 미래의 고성과자를 정확하게 채용할 수 있어야 채용의 공정성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죠.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항목은 성과와의 상관관계가 낮습니다. 평가의 기준을 흐리는 노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채용의 필수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학벌은 과거의 입시 성취일 뿐 미래의 업무 성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자격증은 이론적 지식의 증거일 뿐 실전 문제 해결 능력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외모나 말솜씨 또한 면접을 위해 연출된 모습일 뿐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가 신뢰해 온 지표들은 미래 성과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공정한 채용을 만들 수 있을까요? 성과를 만드는 본질적 힘인 ‘역량’을 채용의 근거로 세워야 합니다. 성과와 관련 없는 평가 기준 대신, 실제 성과 능력을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야말로 지원자 그 자체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공정한 채용의 시작입니다.

역량 중심 채용의 두 가지 효과
역량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면 자연스레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첫째, 실제로 일을 잘할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역량은 성과를 만드는 근원적 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별이나 나이, 종교, 인종 등 차별의 여지도 말끔히 없앨 수 있습니다. 역량은 이런 외적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지요.
평가의 기준을 흐리는 기계적인 공정성을 도입하기보다, 선발 정확성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을 통해 합리성과 공정성을 갖춘 선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역량 중심 채용은 지원자에게도 더 공정합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어도, 화려한 스펙이 없어도, 실제 일을 잘할 수 있는 잠재력만 있다면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진짜 역량으로 평가받는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입니다.
▶️ AI는 도울 뿐, 채용은 사람의 작품
최근 채용 프로세스에 AI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뜨겁습니다. AI가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 오히려 새로운 편향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요. 하지만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채용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주체는 AI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AI는 채용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AI의 역할은 채용 담당자가 더 공정하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근거를 보완하고 편향을 점검해 주는 것입니다. 학벌, 첫인상, 말투 등 사람의 판단에 개입하기 쉬운 요소들이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지요. 즉, AI는 평가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다만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AI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설계되었는지에 따라 한계를 가질 수 있고, 검증 없이 사용하면 오히려 편향을 자동화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핵심은 “AI를 쓰지 말자”가 아니라 “AI에게 기준과 책임을 넘기지 말자”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정한 채용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은 AI이지만 최종 의사 결정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채용의 공정성은 정확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역량으로 볼지, 어떤 판단이 정당한지, 어떤 오류를 더 심각하게 다룰지 같은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사람이 세워야 하고, 책임도 사람이 져야 합니다. AI는 우리가 바라는 채용의 공정성을 수호할 기술 도구일 뿐입니다.
채용의 본질은 언제나 같습니다. 채용은 공정한 기회 속에서 조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진정한 공정성은 결국 ‘역량’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역량 중심’ 채용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그 원칙을 설명할 수 있게 운영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공정한 채용은 기술이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칙을 지키며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