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역량을 과학적 방법으로만 측정할 수 있는 이유
인사 업무를 하다 보면, “역량을 측정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잘 살펴보면 낯선 것 같기도 합니다. ‘측정’이라는 표현 때문에 사람을 단순히 숫자로 재단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HR에서 ‘측정’이 의미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을 단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합리화하고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자(Ruler)를 가지고 있어도, 무엇을 재야 할지 모른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측정이 ‘판단과 예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측정하려는 대상인 ‘역량’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정의되어야 합니다.
HR이 측정하려고 하는 ‘역량’은 무엇일까요? 채용과 육성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정작 똑같은 ‘역량’이라 부르면서도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조직은 역량을 ‘좋은 태도’로 이해하고, 어떤 조직은 ‘성과를 낸 경험’으로 환원합니다. 또 어떤 조직은 역량을 ‘똑똑함’이나 ‘성실함’ 같은 성격적 인상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역량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역량이 무엇인지 합의하지 못하고 있지요.
이 모호함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역량의 근원인 ‘뇌’를 이해해야 합니다.
▶️ 뇌를 알아야 역량이 보인다

뇌의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의 가장 앞쪽에 있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발달해 있습니다. 계획 수립, 충동 억제, 목표 유지, 사회적 판단 같은 기능과 깊이 연결된 곳이지요. 우리가 소위 “사람답다”라고 표현할 때 떠올리는 요소들, 가령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 또는 양심과 염치를 지키며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이런 기능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뇌 이야기를 꺼내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역량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토대를 지나야 합니다. 역량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뇌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형성한 결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전전두피질을 포함한 대뇌피질은 출생 이후 25세 전후까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서히 발달합니다. 보통 사춘기를 지나 성년기에 접어들면 90% 수준까지 완성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전두피질의 성장과 함께 역량도 발달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더 성실하다/똑똑하다” 같은 단편적 설명으로는 사람마다 역량 수준이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역량은 성장 과정에서 뇌와 환경이 주고받은 경험이 누적되며 형성되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개인마다 반응과 선택의 경향이 달라집니다.
▶️ 역량은 '신경경향성'
조직문화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관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과 질서가 형성됩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사이의 수많은 상호작용이 얽히고 쌓이면서 조직만의 고유한 문화가 만들어지지요.
역량을 신경과학적으로 정의하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반복하며 강화된 뇌의 ‘신경경향성(Neural Tendency)’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반복되면 특정 신경망이 굵고 단단해지며, 뇌는 에너지를 덜 쓰는 그 익숙한 경로를 더 자주 선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으로 행동을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 때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인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도 감정이 치솟기보다 상황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는 사람
-첫 만남에서 관계의 긴장을 낮추고 대화를 이어가며 협업 조건을 만드는 사람
이러한 차이는 단지 “원래 성격이 좋다”거나 “그날 기분이 좋았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이 뇌에 남긴 고유한 반응 패턴, 즉 ‘경향성’의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HR이 주목해야 할 ‘역량’의 실체도 경향성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역량은 단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뇌의 회로’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말로 설명하는 능력’이나 ‘한 번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는 역량을 측정하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특정 자극과 상황에서 나타나는 반응의 특징을 관찰하고, 그 반응이 얼마나 일관되게 반복되는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역량 측정과 ‘사람의 인상 평가’와의 차이입니다.
▶️ 보이는 것과 중요한 것은 같지 않다
문제는 이 신경경향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라일 스펜서와 사인 스펜서가 제시한 ‘빙산 모델(Iceberg Model of Competency)’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델은 HR 현장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빙산 모델(Iceberg Model of Competency)
그림에서 보다시피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은 관찰이 가능하지만, 수면 아랫부분은 보이지도 않고 측정도 어렵습니다. 수면 위에 드러난 부분은 인지 영역과 반인지 영역을 가리킵니다. 채용 과정에서 판단 기준이 되는 말씨, 표정, 태도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레벨의 현상은 인지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격이나 지능 같은 심리 레벨의 특성은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검사나 관찰을 통해 일정 부분 파악할 수 있는 반인지 영역에 속합니다.
면접과 인·적성검사는 인지 및 반인지 영역을 측정하는 도구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훨씬 중요하고 큰 영역은 빙산 아랫부분, 즉 ‘비인지 영역’입니다. 인지 영역과 반인지 영역의 특성들도 비인지 영역에서 만들어져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HR이 알고 싶은 ‘진짜 역량’은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비인지 영역이라는 표현처럼, 사람의 인지 능력만으로는 지원자의 실제 역량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면접은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질문을 통해, 제한된 장면만 관찰합니다. 게다가 지원자는 면접을 준비합니다. ‘좋은 답변’은 연습할 수 있고, ‘좋은 태도’는 연출할 수 있습니다. 즉 면접에서 포착하는 것은 역량 그 자체라기보다 ‘좋은 역량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표현 능력일 수 있습니다.
서류전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에 적힌 스펙은 종종 ‘능력의 증거’라기보다 ‘자기표현’으로 기능합니다. 실무 역량의 핵심이 워드 문서나 포트폴리오 하나에 온전히 담기기 어렵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인·적성검사는 어떨까요? 비인지 영역에 접근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인·적성검사는 실전에서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힙니다. 지원자들의 자기 과장과 왜곡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고, 학습과 코칭이 누적될수록 ‘검사에 익숙한 능력’을 측정하는 전형으로 변색되어 버리죠. 정답을 맞히는 형태가 될수록 단편적 지능 평가에 가까워지며, 역량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려워집니다.
다시 말해, 성과에 중요한 역량이 비인지 영역과 연결되어 있고, 경향성의 성격을 띠는 만큼 기존 도구만으로는 ‘깊이’가 모자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량을 더 합리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과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의 역량을 알려면 결국 뇌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과학
인류의 발명품 중 현미경과 망원경은 상징적입니다. 우리 눈의 한계를 넘어 분자, 원자 등 생물 구조까지 접근하게 한 현미경, 대기권을 지나 거대한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준 망원경. 이 도구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단순한 ‘시야 확대’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인지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이죠.
역량도 비슷합니다. 역량은 쉽게 알아낼 수 없는 비인지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관찰만으로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순간의 컨디션, 관계의 맥락, 상황의 압박 등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역량 그 자체가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죠.
면접장의 기억을 떠올려 볼까요? 우리는 말이 유려한 지원자, 혹은 낯선 상황에서 방어적으로 굳어버리는 지원자들을 마주합니다. 문제는 그 모습이 ‘그 사람의 본질적 역량을 얼마나 반영하느냐’입니다. 직접 뇌를 들여다볼 수도 없고, 설령 들여다본다 해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역량을 어떻게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요? 인과를 알려주는 것은 과학입니다. 과학은 현상을 관찰하고, 비슷한 현상 사이의 패턴을 읽으며, 그 패턴 속에 담긴 본질을 밝혀냅니다. 다시 말해 과학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뿐 아니라 그 근본 원리를 찾아내죠.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발전 덕분에 역량의 속성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상 중심의 피상적 이해를 넘어, 역량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죠. 과학적 접근 덕분에 뇌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합리적인 수준으로 역량을 측정할 방법도 찾아냈습니다.
▶️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원칙
역량을 과학적 방법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생물학과 신경과학을 토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역량의 속성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그 측정의 방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역량 측정 결과가 ‘합리적 판단의 기준’과 ‘높은 예측도’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R에서는 역량 측정 결과를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립니다. 채용 과정에서는 ‘누가 미래의 고성과자가 될 것인가’를 예측하고, 육성에서는 ‘역량을 어떻게 발현하게 하여 성공 경험을 만들게 할 것인가’를 판단하지요.
이러한 의사 결정이 합리적이려면 측정 결과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량을 측정할 때 ‘과학적 측정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이지요. 따라서 다음의 최소 조건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과학적 측정의 원칙
1️⃣첫째, 표준화된 자극과 관찰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극과 관찰 조건을 표준화해야 합니다. 면접관마다 질문이 달라지고, 매번 환경이 달라지면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습니다.
2️⃣둘째, 관찰 결과는 해석 가능한 지표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측정은 숫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강하고 어떤 상황에서 약한지, 무엇을 바꾸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3️⃣셋째, 반복 검증이 가능해야 합니다.
측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안정적인 패턴이 드러납니다. 과학이 유의미한 이유도 반복 검증을 통해 우연을 걷어내기 때문입니다.
4️⃣넷째, 예측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채용에서의 역량은 미래 성과를 만들 인재를 찾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미래 성과를 추정하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에 역량 측정 결과가 실제 성과 지표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 네 가지 원칙을 적용하면, 역량 측정은 ‘사람을 재단하는 장치’가 아니라 ‘채용과 육성의 합리성을 높이는 도구’가 됩니다. 채용 과정에 적용하면, 보이는 현상만으로 판단을 내리던 방식에서 그 현상을 만들어낸 조건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이죠.
열매가 현상이라면 씨앗은 속성입니다. 좋은 열매를 기대하며 씨앗을 살펴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HR이 미래의 고성과자를 선발하고자 한다면, 겉으로 드러난 말과 인상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적 방법입니다.
역량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중력이나 자기장처럼 보이지 않는 현상도 측정 가능하게 만들어왔습니다. 역량 역시 과학의 눈으로 더 분명해지고, 그만큼 미래 성과에 대한 예측도 더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