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의 모험』에는 톰이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벌을 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친구 벤이 다가와 그를 놀리기 시작합니다.
“난 수영하러 가는데, 너는 일 때문에 못 가겠구나.”
말썽꾸러기 톰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리곤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요.
“일이라고? 재미있어 죽겠는데? 어린애가 울타리를 칠할 기회가 흔한 줄 아니?”
벤은 갑자기 톰이 부러워져 자신도 해보겠다고 이야기하지만, 톰은 단칼에 거절합니다.
“안 돼. 솜씨 좋게 칠할 수 있는 아이는 한 명뿐일 거야.”
더 간절해진 벤은 가지고 있던 사과를 톰에게 건네며 울타리를 칠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어코 톰에게 붓을 건네받은 벤이 땀을 흘리며 울타리를 칠하는 동안, 톰은 그늘에 앉아 사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까지 줄줄이 나타나 열심히 울타리를 칠하기 시작하지요.
'톰 소여 효과'는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하기 싫거나 힘든 일도 자발적으로 즐겁게 하도록 만드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로 전환되는 순간 일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닌 ‘놀이’가 됩니다. 놀이에 참여한 사람은 점수에 연연할 필요도, 다른 사람을 이길 필요도 없습니다. 놀이는 순수한 즐거움이 목적이기 때문에, 쉽고 자연스럽게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 즐겁게 일하는 사람의 성과가 높은 이유
HR 조직의 과제는 조직 전체가 몰입을 잘 할 수 있도록 문화와 환경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구성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즐거움은 자발성을 낳고, 자발성은 몰입으로 이어지며, 몰입은 다시 성과로 이어집니다. 즐거움이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은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초기 심리학의 동기이론에서는 보상과 처벌이 업무나 과제 같은 구체적 행동을 촉발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칭찬, 금전, 승진 같은 외적 보상이 긍정적 행동을 강화하고, 처벌이 부정적 행동을 억제한다고 본 것이죠.
하지만 이후 진보된 심리학 연구들은 다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특히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몰입하고 창의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보상보다 즐거움, 호기심, 의미 같은 내적 동기에서 더 강하게 비롯됩니다.
과잉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 역시 외적 보상의 한계를 잘 보여줍니다. 원래 즐거움 때문에 하던 일에 금전적 보상이나 경쟁 같은 외적 요소가 개입하면, 그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보상을 받아야 하는 일’로 바뀌면서 오히려 본래의 열정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보상은 단기적으로 행동을 촉발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몰입과 창의성은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49년 해리 할로우의 연구 결과입니다. 그는 원숭이들에게 퍼즐 문제를 준 뒤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우리의 통념과 달리 그들은 보상을 줄 때보다 보상 없이 재미로 문제를 풀었을 때 퍼즐을 더 잘 맞혔습니다. 보상과 처벌이 아닌 ‘즐거움’이 몰입과 성과의 중요한 동기였던 것이죠.
여러 신경과학 연구도 즐거움이 성과의 문을 여는 작동 원리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즐거움을 느낄 때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면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집중력과 학습 능력이 향상됩니다.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져 정서적 안정과 인지적 유연성이 유지됩니다. 이 변화는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끌어올리고, 팀워크와 소통의 효율성까지 강화합니다. 결국 즐거움을 경험하는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게 되고, 곧 조직 전체의 성과 향상으로 직결됩니다.
▶️ 억지로 하는 일은 누구나 괴롭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일할까요? 우리 뇌는 적정한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고대 그리스 사상가 데모크리토스의 일화입니다. 그는 꿀맛 나는 무화과를 먹어 본 뒤 단맛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정원에 심어진 무화과나무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하녀가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자 데모크리토스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무화과가 단 것은 꿀에 담가 두었기 때문이에요.”
하녀의 대답을 듣는 순간 단맛의 근원을 탐구하려던 데모크리토스의 열정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유를 알아버려 도전할 여지가 없어진 것이죠.
신경과학 연구들도 같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뇌는 완전히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는 보상기대 신호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적정 수준의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보상예측과 관련된 도파민 분비가 가장 활발해집니다. 결말이 이미 정해진 일에서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변수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의욕에 불이 지펴지는 것이죠. 결말을 이미 아는 드라마나 스포츠 경기에 흥미를 잃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조직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절차와 결과가 이미 정해진 일은 구성원의 호기심과 기대를 차단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여지를 없앱니다. 반대로 목표는 분명하되 해결 방법은 구성원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과제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긍정적 기대와 자율성을 함께 키웁니다. 절차와 정답까지 미리 정해진 과제에서는 구성원이 단순한 실행자에 머물고 호기심과 재미가 사라집니다. 반면 접근 방법과 해결 과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과제는 시도와 실험의 과정에서 자율성이 살아나고, 몰입과 성과로 이어집니다. 자기결정성 이론 역시 자율성을 지속적인 몰입과 성과를 이끄는 핵심 조건으로 설명합니다.
HR의 과제는 적정한 불확실성이 담긴 과제를 설계하고, 그 과정을 구성원이 스스로 다룰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는 문화와 제도를 갖추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비로소 ‘도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감각이 없으면 같은 불확실성도 금세 혼란과 스트레스로 변합니다.
그래서 목표는 분명히 제시하되 방법과 순서, 속도와 협업 방식 등 구체적인 것은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역할과 권한을 함께 주고, 실험의 경계와 학습을 위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율성이 바탕이 되면, 불확실성은 위협이 아니라 성장과 몰입을 부르는 즐거움의 요소가 됩니다.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억지로 시키기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피곤한 사람에게 억지로 눈을 감겨 재운다고 상상해 볼까요? 혹은 배고픈 사람의 입에 음식을 넣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피곤하고 배고픈 사람도 타인에 의해 억지로 욕구가 채워지는 것은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상황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즐거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의 일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 자발적이지 않은 일은 그저 힘든 노동일 뿐입니다.
동물은 모든 형태의 구속을 싫어합니다. 특히 움직임을 구속하는 것은 본능을 빼앗는 것과 같지요. 동물들은 자발적 움직임을 통해 구한 먹이가 아니면 흥미도 반감됩니다. 1963년 동물심리학자 글렌 젠센은 동물들의 이런 성향을 ‘콘트라프리로딩(contrafreeloading)’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동물이 힘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먹이보다 자신의 힘으로 구한 먹이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대부분의 동물이 이러한 성향을 보였습니다.
사람도 비슷합니다. 노력 없이 얻은 성취보다 자발적 행위를 통해 이룬 성취를 더 값지게 여기지요. 스스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행복감을 크게 느낍니다. 1976년 양로원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1년 6개월 동안 무엇을 먹을지, 무슨 영화를 볼지, 어떤 화분을 돌볼지를 직접 선택했던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행복감과 활력이 뚜렷하게 상승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일을 한다면, 행복감과 에너지가 높아지고, 이는 곧 일에 대한 몰입과 높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 즐거워야 자율적으로 일한다
HR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구성원이 자율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조직은 여전히 ‘자율을 주면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우려 속에서 구성원을 세밀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수많은 평가지표 역시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곤 합니다. 하지만 구성원을 본질적으로 ‘타율로 움직이는 존재’로 전제하는 한 조직은 강요와 지시라는 제한된 수단에 갇히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창의적 협력도 집단 시너지도 만들기 어렵습니다.
지속가능한 최선의 성과는 자율이 보장된 환경에서 발현되는 자발적 행동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입니다. 아무런 보상 없이 오랜 노력으로 습득한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오직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무료 백과사전을 만들었습니다. 경영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사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움직인 가장 큰 동기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즐거움은 누군가가 정해준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주제를 선택하고 방법을 결정하며 기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강력한 내적 동기입니다.
즐거움은 인간의 본질적 동기와 연결된 강력한 에너지원입니다. 깊은 몰입을 통해 최고의 성과가 창출된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 배경에는 항상 자율성과 즐거움이 함께 존재합니다. 통제는 순종을 가져오기 때문에 꽤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잃은 사람에게서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HR의 핵심 과제는 이러한 본성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부합하는 제도와 문화를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구성원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자율적 시도와 학습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때 조직 전체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끌어올려집니다. 이것이 곧 모든 HR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자, 장기적 성과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해법입니다.
▶️ 즐거움을 설계하는 HR의 전략
그렇다면 HR은 어떤 전략으로 구성원이 일에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설계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전략은 구성원의 성장 욕망이 발현될 수 있는 도전적 역할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잘 하고 싶어 하고, 더 잘 크고 싶어 합니다. 성장 욕망과 개인의 관심사가 만나 새로운 도전 기회가 생길 때 우리는 일에는 깊은 즐거움을 느낍니다.
두 번째 전략은 권한 위임을 통해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대한 통제력과 선택권이 없을 때 스스로 자율성을 상실했다고 느낍니다. 억지로 하는 일에서는 결코 즐거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HR은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걸맞은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세 번째 전략은 즐거움이 일시적 불꽃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는 신뢰 기반의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구성원은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그 성과가 자신과 조직 모두의 성장으로 환원된다고 믿을 때 비로소 자율성을 발휘하며 즐겁게 일합니다. 이런 신뢰의 토양 위에서만 자율과 성과가 함께 자랍니다.
‘톰 소여 효과’는 특별한 마법이 아닙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지혜입니다. 사람은 본래 스스로 움직일 때 가장 멀리 가고, 즐거움을 느낄 때 최고의 힘을 발휘합니다. 바람직한 조직은 이러한 자발성을 억누르거나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발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냅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로 바뀌는 순간, 조직은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