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독 3개국의 통상임금 사례 조사
최근 경영계와 HR에서 통상임금 논쟁이 뜨겁습니다.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직 여부나 특정 일수 이상의 근무 조건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죠. 이는 과거 2013년 판결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였습니다. 당시 판결에선 재직여부나 근무일수 등에 따른 조건부 상여금은 통상임금의 3가지 요건 중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었는데, 11년 만에 반대되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이를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이 대조적입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는 '늦었지만 환영'이라는 성명을 통해 환영하는 입장을 보인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등 경영계에서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경영 환경을 악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그렇다면 일찍이 노동법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서는 통상임금을 어떻게 규정하고 판결하고 있을까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미국·일본·독일 세 나라의 통상임금 규정을 살펴봄으로써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1️⃣ 통상임금이란?
2️⃣ 통상임금 기준,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고 있을까?
3️⃣ 시사점과 향후 전망
1️⃣ 통상임금이란?
통상임금의 정의
통상임금을 영어로는 Normal wage 혹은 ordinary wage라고 합니다. 근로자가 약정된 소정근로(월 209시간 등)를 제공했을 때 반드시 지급받는 기본임금이며, 시간 외·야간·연차 수당 등 법정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어떤 요소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할 것인지 산입 범위를 두고 노사 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 산입 범위↑ 통상임금↑ 수당↑, 유리함 사: 산입 범위↑ 통상임금↑ 지급·환급 소요↑ 불리함)
통상임금의 요건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 여부는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2013. 12. 18. 선고 2012다 89399)
판결에 따라,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정근로의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 그리고 고정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12월 19일 판결로 4가지 요건 중 고정성이 제외됐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이 법령상 어디에도 근거가 없으며 이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키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죠.
<통상임금의 요건>
새로운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고정성 요건이 제외됐습니다.
새로운 판결에 따른 파급효과로,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처럼 재직자 조건 또는 근무일수 조건이 포함된 정기 상여금을 지급했던 기업에서는 이를 통상임금에 반영하여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도 했죠.
[속보] 대법, 한화생명 ‘재직자 조건’ 정기상여금 통상임금성 인정한 원심 확정…"고정성 법리 폐기"
[단독] 현대차 노조도 통상임금 투쟁…"대법 판결 무력화"
2️⃣ 통상임금 기준,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까요? 미국과 일본에서는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과, 제외되는 항목을 법제화함으로써 노·사갈등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통상임금
미국은 통상임금에 대한 조건이 비교적 명확한 편으로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지급하는 모든 임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며,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일부 항목에 대해서만 제외 항목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정노동기준법(FLSA) 제206조를 통해 통상임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연장근로수당을 계산하기 위한 기준임금으로, 노·사간 합의로 정할 수 없고, 1주(통상근로)를 단위 고용의 대가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실제 지급한 시간당 임금'
이라는 정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통상임금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노·사간 합의 가능성마저 철저히 배제한, 규제의 명확성과 법적 강제성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노동법과 달리 통상임금 계산에 포함되거나 제외되는 항목을 법률과 시행령에 상세히 규제하고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포함항목
1. 지급 조건이 사전에 정해진 비재량 상여금: 근속 보너스, 성과급, 계약서 상 명시된 연말 성과급
2. 직무 특성에 따라 상시 지급해야 하는 수당: 위험수당·직무수당
3. 영업 실적 등에 따라 지급되는 인센티브: 개인 성과에 따른 커미션
4. 근로자가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할 때 지급되는 대기수당: 소방·경찰, 의료, IT 서버 관리자 등
5. 일정수준을 초과하는 팁(주마다 기준 상이)
등의 항목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어, 연장근로 수당 계산에 포함됩니다.
⛔제외항목
1.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지급하는 재량 상여금으로 근로자가 사전에 기대할 수 없는 것
2.사전에 약속 되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 다만, 연속성이 생길 경우 통상임금으로 간주
3.복리후생 관련 지급: 건강보험료, 생명보험, 연금, 퇴직 보너스 등
4.실질적인 소득이 아닌 보상: 출장비, 업무 관련 장비 구매비, 재택근무 지원금 등
일본의 통상임금
일본에서는 통상임금과 비슷한 개념인 기초임금을 기반으로 잔업수당, 야간수당, 휴일근무수당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기초임금은 크게 3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1.명확한 제외 항목 규정: 일본의 기초임금도 미국의 통상임금처럼, 제외되는 항목을 법령에 명시하여 분쟁 가능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2.기업의 유연성 보장: 통상임금의 구체적인 기준을 회사가 판단할 수 있어, 기업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적용이 가능합니다.
3.정기성 중시: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을 제외함으로써,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포함항목
정기성을 중시하는 특징에 따라 일본에서 기초수당에 포함되는 항목은 기본급과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수당, 두가지로 단순한 편입니다.
⛔제외항목
1.가족수당: 주로 아동이 있는 직원에게 주는 보상으로, 연령에 따라 상이함
2.통근수당: 회사에서 지원하는 교통비는 복리후생으로 간주되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음
3.별거수당: 가족과 떨어져 근무해야 하는 경우에 지급되는 수당
4.주택수당: 주거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수당. 대부분의 회사에서 제공하고 있음
혼자 할 일을 일본은 2명씩...임금보단 고용 택한 일본ㅣJTBC뉴스
독일의 통상임금
앞선 미국, 일본의 사례와 다르게 독일에서는 통상임금을 법제화하는 방식 대신, 노·사간의 자율적 교섭방식인 Tarifautonomie(단체협약 자율성)을 기반으로 통상임금을 합의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장근무의 보상 방식, 보상액 산정 방식 등 많은 부분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 결정함으로써 자발적이고 유연한 합의를 이루고 있습니다. 독일의 통상임금이 가진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노사 자율 결정: 독일에서는 단체협약 자율성(Tarifautonomie) 원리에 따라,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단체협상을 통해 임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합니다.
2.산업별 단체협약: 독일의 집단적 노사관계는 주로 산업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산업별 단체협약(Flächentarifvertrag)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3.법적 규제 최소화: 독일 법령에는 연장근로에 대한 할증임금 산정 기준이나 할증률 관련 규정이 없습니다. 이는 노사 간 협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4.근로시간 규제: 독일 근로시간법(Arbeitszeitgesetz)에 따라 근무일당 최대 8시간, 주당 48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제한됩니다. 초과근무는 하루 2시간으로 제한되며,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8시간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5.초과근무 보상: 많은 경우 초과근무는 유급휴가의 형태로 보상됩니다. 이는 평균 근무시간을 준수하기 위한 방안입니다
정리하면 독일에서는 노·사간의 유연한 합의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을 최우선하는 한편, 법적 규제를 최소화하고(사용자 친화) 근로시간을 규제하는(노동자 친화) 절충안을 통해 노·사 양측에게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노사관계가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도 최근 파업으로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3️⃣ 시사점과 향후 전망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통상임금의 모호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노·사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일본·독일 3개국은 각 국가의 특징이 반영된 고유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통상임금 법제화를 통해 산입항목을 명확히 규정하여 노·사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독일은 노·사 간 자율적 협상을 중시하는 단체협약 자율성 원칙을 따르며, 사회비용을 최소화하고 있었죠. 이처럼 해외 각국의 통상임금 사례를 살펴 봄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통상임금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죠.
1.법제화할 것인가, 자율화할 것인가?: 분쟁의 여지가 없도록 법적 명확성을 강화하는 방법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노·사가 유연하게 합의하도록 장려하는 두 가지 방식 중, 우리사회에는 어떤 방식이 적합할지?
2.다른 보상 방식은 없을까?: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출되는 수당 대신, 유급휴가 등의 다른 보상을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지?
이처럼, 통상임금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고려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향후 국내 통상임금은 대법원 판결의 변화와 함께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논의가 예상됩니다. 고정성 요건 폐지는 통상임금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되겠지만, 동시에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와 노사 갈등 심화라는 과제도 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단기적으로는 법적 명확성을 높이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노사 간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을 유도하는 건강한 논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디지털 경제의 발전과 함께 기존 정규직 중심의 고용 방식에서 비정규직, 긱워커 등 새로운 형태의 고용 방식이 등장하고 발전함에 따라,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를 재정립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노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통상임금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언론 및 기관
11년만의 통상임금 쇼크···대법 전원 합의체 판결이 남긴 것, 월간노동법률
통상임금 해외선 어떻게···, 매일경제
[이슈분석]선진국 통상임금 정책은, 전자신문
[이슈&현장] 통상임금 선진국에선...?, 세계일보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 동아일보
일본의 통상임금은?…"통상임금 기준 회사가 판단", MBC뉴스
`통상임금' 미국ㆍ일본 규정은 어떻게, 연합뉴스
통상임금,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개정)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고용노동부
📝학술지
서울대학교 이철수 교수: 통상임금에 관한 최근 판결의 동향과 쟁점(고정성의 딜레마)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한국노동연구원: 프랑스 노동법 개정 과정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