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글로벌 기업인 유니레버의 신임 CEO는 조직 내 ‘평범한 수준(mediocrity)’의 성과를 타파하겠다며 상위 관리자 200명 중 약 25%를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유니레버가 일관성 없는 실적 흐름을 보여왔고, 전략 대비 실행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하며 조직 운영 방식과 체계 전반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성과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인원 조정과 함께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성과 미달자로 분류된 구성원에게는 개선 계획(PIP, Performance Improvement Plan)을 거치거나 자발적 퇴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퇴사자의 재고용을 2년간 제한하는 규정도 새로 시행했습니다.
이처럼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대부분 기업은 가장 먼저 비용을 줄이거나 각종 제도를 점검합니다. 특히 평가와 보상, 포상과 처벌 제도가 그 대상이 되죠. 물론 제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정교해도 성과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제도들은 오히려 성과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성과를 만드는 주체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외부의 통제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동기에 의해 움직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생각이 열리고, 생각이 열려야 전략이 세워지며, 전략이 실행될 때 비로소 성과가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성과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를 만들거나 고치기 전에 사람의 내면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조직 환경에서 동기를 일으켜 성과를 만들까요? 핵심은 ‘신뢰’입니다. 신뢰가 뿌리내린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이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 기대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동기를 점화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몰입합니다. 반대로 신뢰가 무너지면 회피와 방어에 에너지를 소모하며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성과는 제도가 아니라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성과경영의 핵심은 성과의 주체인 구성원들이 스스로 몰입과 열정을 키울 수 있는 신뢰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 제도는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에서 부진한 성과가 발생한 경우, ‘업무 평가를 더 자주 하자’, ‘KPI를 더 세밀하게 나누자’, ‘보상 조건을 엄격하게 변경하자’ 등 제도를 강화해 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방법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성원 입장에서 “나를 신뢰하지 못하니 더 강하게 감시·관리를 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강화된 제도는 통제의 신호가 되고, 통제는 신뢰를 약화합니다.
불신이 강해지면 방어적 태도가 강해집니다. 방어적 태도는 자율성과 자발성을 약하게 만들고, 성과는 또다시 부진해집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남는 것은 저하된 몰입과 낮은 성과뿐입니다. 이 같은 ‘성과 부진-제도 강화-구성원의 불신 확대’라는 악순환의 핵심 요인은 바로 신뢰를 놓쳤다는 점입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다수의 대기업이 KPI, 성과급, 연봉 세분화 등 제도를 강화해 왔습니다. 제도 개선 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국 갤럽의 2023년 조사 결과, 한국 직장인의 몰입도는 13%로 세계 평균인 21%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이 두 조사를 아울러 정리해 보자면, 한국 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간 성과 제도를 정교하게 바꾸어 왔지만, 세계 최하위 수준의 몰입도라는 결과에 그친 것이지요. 물론 이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오랜 시간의 제도 정교화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제도 강화가 성과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제도의 정교함이나 엄격한 평가 기준이 아니라 신뢰의 부재였던 것이지요. 정말 성과 달성 수준을 높이고 싶다면 신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과의 시작점은 관리와 감독이 아닌 신뢰를 쌓는 것이며, 신뢰가 두터울 때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 성과의 출발점, 신뢰
신뢰는 조직 환경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서 형성됩니다. “이 조직에서 내가 잘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긍정적 기대감이 없을 때 구성원은 불안감을 느끼고 모든 상황을 회피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반대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긍정적이라고 느낄 때는 심리적 안전감과 더불어 신뢰가 형성되면서 적극적으로 성과를 만들기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신뢰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신뢰가 깊을수록 더 큰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는 열정으로 전환됩니다. 열정이 발현되면 사람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전략을 성과로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실행을 제어하고 조정하며 몰입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성과 메커니즘’이라고 합니다. ‘신뢰판단-열정발현-전략모색-제어실행’이라는 네 단계를 통해 성과가 만들어집니다. 이 성과 메커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의 ‘신뢰판단’ 단계입니다. 신뢰 판단의 수준에 따라 이후 각 단계의 크기와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성과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기반이자, 첫 번째 도미노 조각인 셈입니다.
우리 뇌는 어떤 자극이든 들어오면 신뢰 여부에 대한 판단을 자동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자극에 접근할 것인지, 회피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본능적인 과정입니다. 신뢰판단이 긍정적으로 내려지면 뇌는 가치 획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반대로 신뢰판단이 부정적이면, 뇌는 가치 획득보다는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 소극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성과 메커니즘의 작동 원리는 신뢰판단이 부정적으로 형성될 경우 이후 과정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인 열정 발현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가치를 추구하려는 욕망이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적 사고 역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전략적 사고 없이 실행에만 몰두한다면, 소위 ‘삽질’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성과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열정, 전략, 실행은 모두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합니다. 신뢰의 수준이 열정의 크기와 전략의 방향, 그리고 실행의 지속성까지 좌우하지요. 따라서 성과를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변수는 바로 ‘신뢰’입니다.
▶️ 성과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성과 메커니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그 시작은 수백만 년의 진화가 만든 우리 뇌의 판단체계에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더 나은 판단으로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교한 체계를 발달시켰습니다. 환경을 인식하고, 가능성을 탐색하고, 행동 결과를 예측하며, 그 예측을 수정하는 능력이 바로 인간 고유의 판단체계입니다.
판단체계는 ‘정서-감성-이성-초성’의 순서로 작동합니다. 자극이 들어오면, 뇌는 가장 먼저 정서적 반응을 통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이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그 자극이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를 평가하는 감정적 판단이 이어집니다. 그다음 이성적 판단이 개입하여 행동으로 인해 예상되는 가치를 최대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얻기 위한 전략을 모색합니다. 마지막으로 초성 단계에서 메타인지가 개입해 감정적 왜곡이나 이성적 편향을 점검하며 판단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성과 메커니즘은 바로 이 판단체계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정서적 판단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때 ‘신뢰’가 형성되고, 감정적 판단은 그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추구하려는 ‘열정’을 일으킵니다. 이성적 판단은 열정을 에너지로 삼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게 하고, 초성적 판단은 판단 전 과정을 점검하며 실행을 ‘제어’하고 지속시킵니다. 즉 ‘신뢰판단-열정발현-전략모색-제어실행’으로 이어지는 성과 메커니즘은 인간의 뇌가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낸 판단체계가 작동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성과는 이 판단체계를 바탕으로 가치 획득을 위한 긍정성, 적극성, 전략성, 성실성의 성과역량이 발현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이 성과역량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뇌의 핵심 성능이며, 각각의 역량은 성과 메커니즘의 주요 과정과 연결되어 작동합니다.
긍정성이 활성화되면서 가치에 대한 신뢰판단이 이루어지고, 적극성이 발현되면서 가치를 평가하고 열정을 강화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또한 전략성이 작동하면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모색이 가동되며, 마지막으로 성실성이 발현되면서 성과중심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어실행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뇌가 성과를 만들어내는 본질적인 메커니즘입니다. 이 메커니즘은 우리 모두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조직 환경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이 성과 메커니즘이 긍정적으로 작동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신뢰의 토양을 다져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성과중심적 몰입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고 성공경험을 쌓으며 스스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구성원의 성장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성과의 핵심은 신뢰입니다. 결국 경영자와 HR 조직이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것도 바로 성과의 주체인 구성원에게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혹은 일이 주어질 때 구성원은 다음 세 절차를 따라 신뢰를 판단하게 됩니다. 기회를 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기회 자체를 신뢰하게 되고, 이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까지 있으면 성과가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기회 제공자를 신뢰하지 않고, 역할과 기회를 긍정적 가치로 여기지 않아 주어진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성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회피하게 되지요. 신뢰라는 토양이 있어야 열정이 싹을 틔우고 성과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과정이 촘촘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성과 메커니즘이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세 과정을 거치며 신뢰가 두텁게 쌓일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것이 바로 HR의 과제입니다.
먼저, 기회 제공자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회사가 나를 공정하게 대우하고 있으며, 리더는 나를 믿고 일을 역할을 맡긴다”는 확신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조직과 리더가 신뢰받을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공정한 제도와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고, 리더가 신뢰라는 기반 위에서 구성원을 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기회에 대한 신뢰를 심어줄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성원은 자신이 맡은 과제가 단기적이고 소모적인 일이 아니라, 의미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성장으로 이어지는 기회라고 느껴야 합니다. 일이 곧 성장의 발판이 된다는 믿음이 생길 때 높은 수준의 몰입이 일어나게 됩니다. HR은 각각의 역할 배치와 과제 설계를 공정하게 하여, 기회가 도전과 성취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동기의 지속성은 낮아집니다. HR은 구성원의 자기효능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역량 개발의 기회를 제공하고, 성공경험 여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일상적으로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HR의 본질적 임무는 신뢰라는 토양을 만들어 성과를 경작하는 일입니다. 리더와 조직, 기회, 구성원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맞물릴 때 성과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게 됩니다. HR이 이 신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축적해갈 때 치열하게 고민한 전략과 제도가 에너지를 더해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