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주인처럼 일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처럼 일한다는 것은 자신이 맡은 일에서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며 책임감을 갖고 몰입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에 나오는 리코의 이야기는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어떻게 책임과 몰입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리코는 무비카메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많은 동료들은 마지못해 일을 하며 ‘나는 이런 하찮은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리코는 달랐습니다. 그는 43초마다 한 대씩 무비카메라의 규격을 점검하는 일을 맡았는데, 오랜 연구와 시도 끝에 그 시간을 28초로 단축했습니다. 이 성과로 특별한 보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해낸 일에서 자부심과 희열을 느꼈습니다.
리코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은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가치와 목표를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성과를 만들고 몰입을 이끌어낸 것이지요.
그런데 리코는 어떻게 이런 주인의식(ownership mindset)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요구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인의식은 인간 본성에 자리한 자주성, 자발성, 자율성이 발현되면서 드러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주체적으로 행동하고자 하고, 스스로 선택한 일에 더 큰 에너지를 내며, 불필요한 간섭 없이 자유롭게 판단하길 원하는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인의식은 인위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내면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HR의 과제는 그 본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씨앗이 햇빛과 물을 만나야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듯이 사람의 주인의식도 적절한 환경과 조건이 뒷받침되었을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현됩니다.
구성원들은 비록 법적으로 회사의 주인이 될 수는 없어도 자신이 맡은 일의 주인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일의 주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책임감을 갖고 성과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 주인의식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렇다면 구성원은 어떤 환경에서 스스로 일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주인의식이 어떤 속성에서 비롯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성, 자발성,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속성을 하나씩 살펴보면, 왜 환경 설계가 중요한지 한층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첫째, 자주성입니다. 이는 타인의 지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며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내적 동력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를 때보다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할 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자주성이 발현되면 결과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몫으로 책임지며, 더 높은 기준을 세워 성과에 몰입하게 됩니다.
둘째, 자발성입니다. 이는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에너지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힘입니다. 사람은 억지로 떠맡은 일에는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임하지만,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 선택한 일에는 열정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깊이 몰입합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니라 뇌의 보상체계가 외적 보상보다 내적 동기에 더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자발성이 살아날 때 사람은 일의 결과를 자신의 성취로 받아들이며 주인의식을 한층 더 굳건히 하게 됩니다.
셋째, 자율성입니다. 이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질 때 발현되는 능동적 판단과 실행의 힘입니다. 통제와 간섭 속에서는 주인의식이 자라기 어렵지만,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때 사람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몰입합니다. 자율성은 방종이 아니라 책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자율성이 보장될 때 사람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스스로 성과를 만들어내며 성장하는 능동적 주체가 됩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자주성, 자발성,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본성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즉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사람은 자주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율적으로 일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타율적으로 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주인의식을 살려내는 세 가지 문화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HR 경영에 접목할 수 있을까요? 조직이 마련해야 할 환경은 크게 세 가지 문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자주성이 발휘되는 긍정문화, 공정한 기회와 보상을 통해 자발성이 살아나는 동기문화, 그리고 권한과 자율이 존중되면서도 결과에 책임을 지는 성과문화입니다. 이러한 조직문화가 뒷받침될 때 구성원은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고, 조직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1️⃣긍정 문화: 복지체계와 소통체계
긍정 문화는 신뢰를 기반으로 구성원들이 자주성을 발휘하도록 이끕니다. 따라서 긍정 문화는 곧 신뢰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으며, 자신의 노력이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자주적으로 움직입니다.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결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불신이 자리 잡으면 열정은 빠르게 식습니다.
따라서 긍정 문화를 설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 책임지고 몰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긍정 문화 구축을 위해 HR 조직은 두 가지 체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복지체계와 소통체계입니다. 두 체계는 각각 안정적 신뢰와 긍정적 신뢰와 관련이 깊습니다. 복지는 불안정성을 줄여 안정적 신뢰를, 소통은 투명성과 공감을 통해 긍정적 신뢰를 형성합니다.
안정적 신뢰는 생존과 직결된 욕구를 충족할 때 형성됩니다. 임금, 복지, 안전한 근무환경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구성원은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현재의 일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지제도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금전적 보상과 생활 안정을 모두 포함하는 ‘총보상(total compensation)’ 체계로 접근해야 하며, 이것이 신뢰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긍정적 신뢰는 자신과 환경에 대한 믿음에서 생깁니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소통체계가 필요합니다.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구성원과 공유하고 참여 기회를 보장할 때 오해와 불신은 줄어들고 공감과 소속감은 커집니다. 서로를 신뢰하며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구성원들은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주체적 태도를 갖게 됩니다.
2️⃣동기 문화: 기회체계와 보상체계
동기 문화는 구성원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기반입니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동기가 사라질 때 주인의식을 잃습니다.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보상이 주어질 때 비로소 스스로 도전하고 싶어지는내적 동기가 생겨납니다.
동기를 촉발하고 강화하는 문화는 기회체계와 보상체계라는 두 축 위에서 형성됩니다. 기회체계는 새로운 도전의 문을 열어주고, 보상체계는 그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도록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사람은 스스로 도전할 힘을 얻고, 그 성취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주인의식을 키워갑니다.
기회체계의 본질은 공평성입니다. 구성원의 적성과 역량에 맞는 도전적 기회를 제공해야 성취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충족됩니다.반복적인 업무는 성취감을 제한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프로젝트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성과를 내는 인재에게는 더 큰 책임을, 젊은 인재에게는 과감한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회는 존중받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보상체계의 본질은 공정성입니다.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자발성은 동력을 잃고 약화됩니다. 그러나 금전적 보상은 단기적 효과에 그치고 오히려 권리의식과 경쟁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인정, 존중, 의미, 비전과 같은 내적·정신적 보상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일에서 의미와 성장을 느낄 수 있을 때 장기적인 동기가 유지됩니다.
3️⃣성과 문화: 조직체계와 성과체계
성과 문화는 자율성을 보장합니다. 목표와 기준은 분명히 하되 일하는 방식과 과정은 구성원 스스로 주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를 어떤 절차로 진행할지, 누구와 협력할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권한을 위임해야 합니다. 상사가 일일이 지시하는 대신 방향과 결과만 합의하고, 그 과정은 구성원의 판단에 맡길 때 책임과 몰입이 살아납니다.
이러한 성과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두 가지 체계가 필요합니다. 나는 권한 위임을 통해 자율을 뒷받침하는 조직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율이 책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성과체계입니다. 두 체계가 균형 있게 작동할 때 자율은 방종이 아니라 성과와 성장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조직체계의 본질은 유기성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조직은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세포가 독립적이면서도 공동의 존속을 위해 협력하듯 구성원과 조직은 공동운명체입니다.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과 구성원의 욕망이 일치할 때 자발적 열정이 발휘되며, 이는 통제가 아니라 자율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자율을 뒷받침하는 조직체계의 핵심은 ‘권한 위임’입니다. 단순히 역할이나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행 권한까지 함께 부여되어야 구성원은 진정으로 일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주인의식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성과체계의 본질은 책임성입니다. 기존의 성과체계가 보상을 위한 평가 장치로만 여겨졌다면, 자율과 책임을 이끌기 위한 성과체계는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하는 장치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구성원에게 권한이 주어져 자율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더라도, 그 결과가 확인되지 않으면 자율은 쉽게 방종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가는 신상필벌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구성원의 성과가 조직 목표 달성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학습을 통해 어떤 성장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상은 그 성장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처럼 성과체계가 성장을 지원할 때 구성원은 “내가 결정하고 실행한 결과가 조직 성과로 이어지고, 그 경험이 나의 성장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율은 방종이 아니라 책임으로 전환됩니다. 결국 성과는 통제가 아니라 자율적 책임 속에서 창출되며, 성과체계가 이 원리를 반영할 때 개인과 조직은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HR 경영은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이다
성공하는 조직에는 하나의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내적 동기를 발현하며, 각자 맡은 일의 주인이 되어 성과에 몰입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강요받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간섭받지 않는 자율적 환경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이러한 조직 DNA의 출발점은 ‘신뢰’입니다. 신뢰는 주인의식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며, 주인의식은 그 위에서 자라나고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신뢰를 경험한 구성원은 스스로를 일의 주인으로 여기며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실행합니다. 이러한 개별적 에너지는 조직 전체로 확산되어 집단적 역동성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는 아무리 정교한 제도를 설계한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본성을 믿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HR 경영의 본질은 제도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에 있습니다.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요소라서 추상적으로 접근하기 쉽지만, 사실 그 기반은 과학입니다. 사람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해가 선행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