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늑대의 제국>에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위를 흰 늑대 무리가 묵묵히 이동합니다. 거센 눈보라가 방금 전 지나온 발자국마저 흔적 없이 지워내지만, 무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듯 흔들림 없이 전진합니다.
늑대 무리가 이렇게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알파(alpha)의 존재 덕분입니다. 알파는 때로는 선두에서 위험한 길을 먼저 걸으며 무리를 이끌고, 때로는 후방에서 새끼와 약한 개체들을 지키며, 또 때로는 무리 한가운데서 흩어질 듯한 대열을 하나로 묶어냅니다.
동물 무리 가운데 가장 높은 계급과 서열을 가진 알파는 우리가 상상하는 ‘우두머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알파는 집단의 중심축이 되어 무리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며, 우수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냉혹한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태계에서 무리의 생존과 번영은 상당 부분 알파의 리더십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인류의 존속과 발전 역시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리더들의 영향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부처와 예수와 같은 종교적 지도자들,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와 같은 사회적 리더들의 가르침은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조직의 성패는 리더에서 결정된다
기업 경영에서 리더가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혁신적 리더가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일론 머스크의 창의적 리더십이 아니라면 과연 스페이스X가 화성 이주를 꿈꿀 수 있었을까요? 제프 베조스가 없었다면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에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리더는 조직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입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핵심은 ‘집단 시너지’에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이 단순히 더해지는 것을 넘어 집단 시너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방향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리더는 방향과 질서를 설계해 구성원의 동기와 역량을 조직의 공동 목표로 연결하고, 집단 시너지를 창출하며 조직의 발전을 이끕니다.
“조직의 크기는 리더의 크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과 시스템, 풍부한 자원이 있어도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리더가 부족하면 조직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조직을 키운다는 것은 곧 리더를 키우는 일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HR 조직의 고민도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를 어떻게 발굴하고 키워낼 것인가?”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리더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정의해야 합니다.
▶️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모든 조직에는 인재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를 집약한 정체성이지요.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리더의 상(像) 또한 명확히 정립해야 합니다.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는 리더십을 카리스마, 추진력, 친화력과 같은 개인의 성향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 성향은 조직 상황과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추진력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독단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친화력은 갈등을 완화할 수 있지만, 때로는 단호한 결단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바뀌지 않을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모든 리더가 공통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하나입니다. 바로 ‘성과’입니다. 모든 조직은 성과를 창출해야 존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과를 만드는 주체는 리더가 아닌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변하지 않을 리더십의 핵심은 ‘구성원이 성과를 잘 내도록 지원함으로써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리더의 핵심 역할은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구성원의 성공경험을 지원해야 합니다. 구성원 성장의 핵심 동력이 바로 ‘성공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은 성과를 만들어 성공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더 큰 동기를 불러일으켜 더 큰 성과로 이어집니다. 성과가 축적되면서 성취감이나 자신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 경험이 쌓이고, 이를 통해 구성원은 개인의 목표 추구를 넘어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둘째, 구성원 성장이 조직 발전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즉 구성원의 동기와 역량을 조직 목표에 연결해 집단 시너지를 창출해야 합니다. 리더는 열정이라는 에너지를 활용해 구성원의 동기를 촉발하고 협력적 상호작용을 강화합니다. 더 나아가 구성원의 동기가 흩어지지 않고 공동 목표에 정렬되도록 함으로써 조직의 결속력과 시너지를 창출합니다.
리더는 혼자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구성원이 성과를 내고 성공경험을 통해 성장하도록 불씨를 지펴주는 점화자입니다. 동시에 그 성장이 다시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내는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좋은 리더가 있는 조직은 구성원이 성장하고, 성장한 구성원이 다시 조직을 앞으로 이끄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는 조직에는 언제나 이러한 선순환을 설계하고 촉진하는 리더십이 존재합니다.
▶️ 리더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리더는 조직의 존속과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리더 발탁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조직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선택이지요.
과거에는 주로 경영진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리더를 발탁했습니다. 시장이 안정적이어서 성장 패턴을 예측할 수 있던 시절에는 이러한 방식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가속화되고 불확실성이 커진 오늘날에는 개인의 판단만으로는 미래를 책임질 리더를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발탁’이 아니라 ‘선발’이어야 합니다. HR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리더십의 본질적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 기준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선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리더를 선발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까요?
- 1️⃣ 리더 역할은 ‘역량’을 기반으로
먼저, 리더는 ‘자리’가 아닌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리더를 자리로 여기는 사람은 구성원 위에 군림하려 하고 결국 최악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구성원과 조직 전체의 성과보다는 개인의 성과에 집중하고 구성원을 그저 수단으로 여길 위험이 있지요.
리더십은 명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주어진 역할과 맡은 책임을 다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리더를 선발할 때는 “얼마나 오래 있었는가?”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리더에게 주어진 가장 큰 책임은 구성원과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통해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이를 조직의 목표 달성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 2️⃣ 리더 선발은 객관적으로
둘째, 리더의 역할은 그 사람에 대한 주관적 기대가 아닌 객관적으로 검증된 역량을 기준으로 맡겨져야 합니다. 그동안 많은 조직이 경영진의 촉이나 감에 의존해 리더를 발탁해 왔지만, 이는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사람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주관적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연, 학연, 친소 관계에 따라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후보자가 어떤 경험을 쌓아왔는지, 어떤 성과를 만들어왔는지, 함께 일한 동료와 구성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객관적 데이터와 다면적 검증을 통해 살펴야 합니다. 단순히 과거의 직급이나 근속 연수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과 잠재력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 3️⃣ 미래의 역할을 기준으로
마지막으로, 리더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선발해야 합니다. 팀원이었을 때 높은 성과를 냈다고 해서 리더 역할에서도 동일한 성과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역할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또 그 역량을 통해 계속 성장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의 핵심 역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더는 개인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이 성과를 잘 내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선발 기준은 신뢰를 구축하고, 동기를 촉발하며, 전략을 코칭하고, 솔선수범으로 이끄는 네 가지 능력을 중심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동안 많은 조직은 리더를 뽑을 때 ‘사다리식 승진 구조’에 의존해 왔습니다. 오래 근무하고 차례가 되면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경력의 길이와 직급의 높이가 곧바로 리더십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약관화합니다. 오히려 이 방식은 준비되지 않은 인물을 리더 자리에 앉혀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손실을 안길 위험이 큽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리를 채우는 순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미래를 이끌 리더로서의 역량이 충분히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HR 조직에서는 연공서열식 ‘발탁’의 관성을 넘어, 역량과 잠재력을 기준으로 한 ‘선발’ 시스템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길입니다.
▶️ 리더가 조직의 미래다
리더를 발탁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본격적인 과제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조직은 리더를 뽑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육성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흐르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더십이 조직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바로 ‘리더십 파이프라인’입니다.
파이프라인은 단순히 후임자를 준비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차세대 리더를 꾸준히 발굴하고 육성하여 리더십이 특정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조직 전체에 순환하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이를 통해 조직은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리더를 발탁하고 육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직책을 주는 인사 행위가 아닙니다. 조직의 내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경영 행위이자 성장 과정입니다. 리더 한 명의 성장은 조직 전체의 성장으로 연결되며,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조직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키우는 책임은 리더십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리더 육성의 최종 목표는 ‘완성된 리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성과와 성장을 지원하는 상호작용 구조를 조직 안에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리더가 구성원의 성공경험을 돕고, 구성원은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그 성장이 다시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질 때 사람과 조직은 함께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선순환은 조직의 지속적 성장을 견인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입니다.
결국 경영은 사람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오늘날 HR의 과제는 제도나 절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과와 성장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리더 육성은 그 출발점이며, 조직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