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실패 관리: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여기 물컵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일정 시간 안에 이 물컵에 물을 가득 채우려 합니다. 물컵에 물을 채우려면 우선 물이 어디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물이 들어 있는 접시를 찾았습니다. 접시에 든 물의 양은 컵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해 보였고, 접시를 들어 컵에 물을 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접시와 컵이 둥근 모양이다 보니 컵 밖으로 물이 새는 것입니다. 물컵은 반밖에 차지 못했습니다. 충분한 양의 물을 가지고도, 물컵을 가득 채우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때론 충분한 양의 자원을 가지고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토록 간단한 물컵 채우기를 실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물컵과 접시'에 대한, 즉 도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사용할 도구의 특성을 정확히 몰랐던 것이죠. 둘째, 시간이라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깔때기 같은 맞춤형 도구를 사용해 볼 수 있었겠지만, 가져오기에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또 다른 자원인 물의 양도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컵 밖으로 흘리는 비율이 같더라도 접시에 있는 물의 총량이 더 많았다면, 물컵을 다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과 중심적 사고 vs 효과 중심적 사고
'둥근 모양의 물컵에 물을 가득 채운다'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 정보, 도구를 갖춰 놓고 물컵을 채우는 사고 방식을 인과 중심적 사고(causation process)라고 합니다. 반면 주어진 재료, 정보, 도구가 제한적인 상태에서 물컵을 채울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찾거나, 혹은 '둥근 모양의 컵'이 아니라 '정육면체 모양의 컵'으로, 제한된 자원을 바탕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고 방식을 효과 중심적 사고(effectuation process)라고 말합니다.
10년 전쯤 유행했던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나요? '출연자의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라는 한정된 재료와 1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만든다는 컨셉은 효과 중심적 사고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와 '15분'이라는 제한된 조건만으로 요리해야 하는 「냉장고를 부탁해」, 출처: JTBC)
현장에서 우리가 겪는 환경은 대부분 효과 중심적 사고를 요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 지식, 정보, 경험을 비롯한 모든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족한 양의 자원은 우리가 온전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제한된 합리성을 전제하고 일합니다. 제한된 합리성에 기반해 우리는 최고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판단 vs 진단?
앞선 '물컵 채우기'를 실패하고 나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만납니다. 첫째, 물컵을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실패로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이는 '판단'입니다. 즉, 판단이란 지나간 사건에 대해 잘했거나 잘하지 못했다고 특정 시점에 단정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물컵을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원인을 파악한 뒤, 다음에 물컵을 채울 땐 어떻게 가득 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진단'입니다. 여기에서 진단은 물컵을 가득 채우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작점이 됩니다.
("진단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고민하는 시작점이 됩니다")
실패를 관리하는 것
이처럼 실패를 관리한다는 건, 현 상태를 '판단'하는 대신 '진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진단을 통해 현 상태를 인식하고, 목표하는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도출하고 실행하여 더 나은 성과를 만드는 과정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관리하는 도구, 성과관리 제도
조직이 실패를 관리하는 과정을 성과관리 제도로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연 단위 목표를 수립하고 운영하고 있다면 진단 주기는 최소 분기 단위로 설정하고, 매 분기마다 해당 분기에 수행한 주요 성과를 중심으로 현 상태를 진단하기 위한 항목들을 설정합니다.(해당 성과에서 잘한 점이 무엇인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등) 현 상태를 확인했다면 다음 분기에 잘하는 것은 발전시키고, 개선할 점은 고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지 논의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으로 우리는 구체적인 절차와 양식을 만들어 진단 도구, 즉 성과관리 제도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과관리 제도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조직에서는 '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은 '성공을 위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는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성과'로 이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 기업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공통된 인식이 모든 구성원의 의식 깊은 곳에 만들어진 상태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우리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입니까?"라고 어떤 구성원에게 물어보더라도 "개선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공통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판단에서 진단으로.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우리는 결국 판단 대신 진단의 관점으로 실패를 바라봐야 합니다.
18년 째 HR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판단에서 진단으로의 관점 전환에 있어서 인사제도, 특히 성과 관리제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조직 및 구성원의 입장에서 보면, 인사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가장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구성원은 관점을 바꿀 것이고, 결국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견(異見)으로 표현되는, 구성원의 수 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사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모든 단계에서 발생한 다양성을 소통을 통해 풀어내고 문화로 승화시킴으로써 판단이 아니라 진단하는, 성공을 위한 실패 관리로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Sarasvathy, S. D. (2001). "Causation and effectuation: Toward a theoretical shift from economic inevitability to entrepreneurial contingency."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6(2): 243-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