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2022년 출산율 통계가 발표됐습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이미 세계 최저 수치였는데요. 바닥인 줄 알았던 그 수치가 바닥이 아니었어요. 다시 한 번 바닥을 찍었습니다. 2023년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래요. 1년에 태어나는 아이가 1명도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에 대한 뉴스를 접한 건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지만, 나날이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후 위기 문제가 오랫동안 거론됐지만, 요즘에 더욱 피부로 그 위기감을 느끼는 것처럼요.
그런데 저출산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에요. 전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청년들의 ‘섹스리스’ 가치관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보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 생활>에서 세계 전반의 저출산 문제를 다양하게 모아 뒀으니, 꼭 한 번 살펴보세요! (무척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위 영상에서 정말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에 나타난 공통점이었어요. 바로 국가의 출산과 육아 정책이 어떠한가에 따라 출산율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출산과 육아를 개인의 역할과 책임에만 두느냐, 국가가 함께 분담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이 아젠다를 경제계와 합심해 해결하겠다고 했어요. 정부는 “육아 휴직과 유연근무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인사평가나 부서 배치 등 고용 전 과정에 불이익이나 차별이 없도록 노력해달라”고 했죠.
실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움직임만 있어서는 안 돼요. 정부가 지난 16년간 약 280조원의 저출생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생아 수가 10년 전 절반 수준인 25만명 아래로 떨어진 데에는 일과 가정 양립을 어렵게 하는 경직된 노동 환경이라는 본질적 문제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요즘 기업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인사를 살피고, 기업 경영을 돕는 HRer라면 이 문제를 흘려보내진 않을 것 같아요.
인구의 종말을 그린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정책과 기업의 움직임을 보기 전에 영화 먼저 소개합니다. <칠드런 오브 맨>은 무려 2006년 작품인데요. 이 영화는 저출산을 넘어, 무출산이라는 세계적 초유의 사태를 그립니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초인류적 재앙 앞에 세계 곳곳은 폐허로 변했거나, 사라졌습니다. 경찰국가로 변한 영국은 정부의 철권통치로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지만, 경제는 붕괴한 지 오래죠.
주인공 ‘테오’는 정부와 국가 기능이 조금이나마 유지된 영국의 공무원인데요. 한때 사회운동가였지만 지금은 친구와 마약을 즐기며 무력한 매일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혼한 아내 줄리안이 찾아와 임신한 흑인 소녀 ‘키’를 영국 밖으로 빼내는 작업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하죠. 그러면서 영화가 본격 전개됩니다.
저출산으로 흔들리는 경제 구조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인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직결되기 때문일 거예요. 생산의 3대 요소는 노동력과 토지, 자본이니까요. 인구경제학에서는 ‘생산가능인구’를 15세에서 64세 사이로 정의합니다. 전체 인구가 늘더라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비용은 증가하죠. 그리고 생산가능인구는 주 수요 인구이기도 합니다. 즉, 생산과 수요의 중요한 연령대인 셈이에요.
일선 산업 현장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크게 체감하고 있대요. 젊은 근로자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는 거죠.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헤럴드경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어요.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장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출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거죠.
지속가능성을 맥락으로 움직이는 기업
포스코는 저출산 문제를 정확히 직면하려고 노력하는 기업 중 한 곳인데요. 아예 저출산 해법 롤 모델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여러 제도와 정책이 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건, ‘경력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제’예요.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경우 반일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는 건데요. 육아 환경에 맞춰 근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기도 하대요.
최근엔 직장 내 어린이집 중 포항과 서울에 위치한 2곳을 포스코 임직원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 자녀들에게도 개방했어요. 수업비부터 식사비까지 전액 지원하죠. 덕분에 현재 51개 협력업체 직원이 포스코그룹 어린이집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매년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는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하네요.
현대차그룹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8월 현대자동차 양재 본사 어린이집을 증축했어요. 수용 원아를 62명에서 107명까지 늘렸죠. 또 유연근무제를 적극 시행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의 일부라고 해요. 최근 현대오토에버 직원들의 유연근무제 활용률은 97.8%에 달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육아휴직 제도일 텐데요. 여성들의 육아휴직도 당연히 보장하지만, 남성들의 육아휴직 사용도 적극 권장한다고 해요. 현대오토에버에서 육아휴직을 활용한 남성 근로자 비율은 76%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례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건, 분명 환영할 만한데요. 이런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질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육아 휴직은 대기업에 한정된 복지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여러분의 기업은 어떤가요? 아직까지 급하지 않은 안건으로 여기고 있진 않으신가요? ESG 경영이 단순히 트렌드가 아닌 필수 조건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인구 변화를 고민하고 대응하는 자세도 기업의 핵심 역량으로 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다음 화에서는 ‘고령 인구 증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