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에 관심을 둔 분이라면, 올해 가장 중요한 트렌드 키워드가 ‘과시적 비소비’라는 걸 들어보셨을 거예요. 신상품이나 화려한 무언가를 인증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지 않는 행위를 자랑하는 트렌드인데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 제품을 사면 절약을 위해서, 혹은 예산이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뒤따랐어요. 하지만 요즘엔 달라요. 중고품을 산다는 건, 자원의 순환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지속가능성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가치를 드러내는 거죠.
심지어 명품 브랜드도 중고시장에 들어오고 있어요. 구찌의 모기업 케어링(Kering)그룹은 중고 명품 플랫폼과 손을 잡고 온라인에서 직접 자기들의 중고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지난 해에는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 ‘베스티에르’의 지분 5%를 확보하기도 했고요. 고객들에게 중고품을 직접 사들여 정품 여부를 확인해 ‘브랜드 승인’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하기도 합니다. 브랜드가 직접 인증한 중고 제품이니, 소비자들은 더 신뢰를 할 수 있게 되죠.
이 외에도 요즘 소비자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 지향, 화학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 등 자기만의 자발적 비소비를 실천하고, 드러냅니다. 하는 행위(To Do)보다 하지 않는 행위(Not To Do)가 더 힘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트렌드는 소비자에게만 부는 바람이 아니에요. 요즘 브랜드들은 ‘우리는 가장 탁월합니다’라는 문구 대신 ‘우리는 ~을 하지 않아요’라는 선언을 광고하죠. 어떤 비소비를 과시하는지 볼까요?
구성원의 주도권을 살리는 미니멀 오피스
건축가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산업화는 곧 장식이 사라지는 걸 의미합니다. 한때 유럽의 건축사를 이끈 가우디의 건축물들엔 화려한 장식이 가득해요. 하지만 그 건축들에서 장식이 모두 사라져도 제기능을 하는 덴 아무 문제가 없죠. 물론 상징성은 사라질 겁니다. 가우디 건축의 차별성은 사상과 철학을 담은 장식이니까요.
옛날에는 매체나 도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장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어요. 하지만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상징은 글이나 책으로, TV나 스마트폰으로 대체됐습니다. 그 탓에 정보가 충분하다 못해 과잉으로 피곤한 사회가 됐지만요.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공간을 원해요.
그런 맥락으로 요즘 지어지는 사무실 인테리어를 바라봐도 좋겠어요. 지난해에 문을 연 네이버의 신사옥 ‘1784’의 디자인도 그렇습니다. 필요에 따라 공간의 배치를 달리 할 수 있도록, 바닥은 플랫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기둥을 없앴어요. 가벽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고요. 최소한의 요소를 넣고 장식적인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유연한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거예요. 구성원들은 이 공간을 수동적인 자세로 활용하기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용도를 떠올리고, 그에 맞게 구성하며 일합니다. 채움의 공간보다 비움의 공간이 많으니 더 주도적인 생각이 가능한 거예요.
이미지 출처: 바이라인네트워크
브랜딩을 하지 않은 브랜드
지난해 12월, 브랜딩에 꽤나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영상이 있어요. 바로 패션 브랜드 ‘세터’ 대표의 인터뷰 영상이었는데요. 세터는 런칭한 지 고작 2년차인데 매출이 100억대를 훌쩍 넘는 성장을 보이는 곳이에요. 이렇게 폭발적인 성장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 보니, 다름 아닌 브랜딩을 하지 않은 것에 있다고 하더군요.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브랜딩을 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시대의 메시지와 정반대였거든요. 물론 브랜딩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초기 브랜드일수록 브랜딩보다 ‘장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브랜딩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세터는 자기 영역을 만드는 일보다 선행돼야 하는 게, 어떤 고객에게 어떤 필요를 제공할 것인가 라고 말해요.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는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찾아 나섰대요. '내 스타일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 스타일을 살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라는 고민부터 파고든 거죠. 그 뒤에 나의 기호를 담아 내 구역을 만드는 브랜딩을 시작했대요. 세터의 이 자세는 브랜드의 명확한 목표에서 비롯한 것 같아요. 우리의 예술성과 독착성을 뽐내는 데 있지 않고, 팔리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요.
만들지 않고 버리지 않는 브랜드
못생긴 채소를 배달하는 브랜드, 어글리어스를 들어보셨나요? 말그대로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크고, 혹은 농약을 쓰지 않아 흠집이 생겼거나, 열매가 자라다가 서로 치여 살짝 멍이 든 채소들을 판매하는 브랜드인데요. 그 채소들은 모두 생긴 게 제각각이라 상품성은 없지만, 영양가는 뛰어난 것들이에요. 생김새 때문에 버려지는 채소가 많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어글리어스가 출범했어요.
어글리어스는 세상에 없던 상품을 만들지 않았어요. 기존에 버려지는 것들을 구출했죠. 이들의 약속은 여느 브랜드와 조금 달라요. ‘~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을 하지 않겠다’라는 더 강한 어조를 내비치죠. ‘불필요한 낭비를 막습니다’, ‘못난이 농산물을 헐값에 사들이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포장을 연구하고, 플라스틱을 지양합니다’. 이 브랜드는 안 하는 일투성이에요. 그래서 더욱 확고합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지침 정도가 아니라, 존재 이유처럼 느껴져요.
트렌드 리포트를 살피다 보면, 우리는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곤 합니다. 대세에 편승하면서도 우리 기업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죠.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에 알아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더 많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곤고한 브랜드의 힘을 갖추기 위해, 여러분의 기업이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