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리 해고 바람 기억하시죠. 아뇨, 질문이 잘못된 것 같네요. 그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으니까요. 트위터에 이어 메타, 아마존, 세일즈포스,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심지어 믿었던 구글에서도! 구글은 지난 20일에 1만 2천 명을 해고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어떤 변화라도 일어나는 법인데요. 그 변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태풍은 우리의 터전을 부수는 위협적인 존재 같아도, 태풍 덕분에 바다에선 정화작용이 일어나죠. 한편, 태풍이 지구의 모든 전역을 휩쓰는 건 아닙니다. 나무가 뿌리채 뽑힐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미풍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곳이 있기 마련이죠. 2022년부터 이어지는 실리콘밸리의 해고 칼바람이 일으킨 변화는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바람의 근원지, 트위터
이 칼바람의 스타트를 끊은 건, 어쩌면 트위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의 경영권을 인수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트위터 경영진을 해고하는 일이었는데요. 뒤이어 차례로 정규직과 계약직을 무작위로 해고하더니, 결국 전체 직원의 약 절반 이상을 조직에서 내보냈습니다. 머스크의 강경책으로 조직에 불안함을 느낀 구성원 수백 명은 자진 퇴사를 하기도 했고요. 결론적으로 80% 이상의 구성원이 조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인원 감축 과정에서 조직에 꼭 필요한 인력이 정리되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핵심 인력인 엔지니어가 550명 미만으로 줄어드는가 하면, 불법 콘텐츠나 유해성 콘텐츠를 검열을 담당하는 ‘신뢰와 안전’ 부서 인력도 20명 미만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뿐만 아니에요. 정리 해고 인원 중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는 문제가 제기됐어요. 실제로 트위터 전체 직원 중 57%의 여성 직원이 해고된 반면, 남성 직원은 47%에 그쳤다고 해요. 해고된 직원들은 함께 연대해서 트위터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트위터가 직장 내 성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법률을 위반했다고요.
부당한 해고와 적절치 못한 대응. 조직 안팎으로 이미지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광고 수익입니다. 트위터 매출의 9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트위터 운영에 있어 절대적인 광고 매출액은 지난해 12월, 71% 급감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연말은 쇼핑 시즌을 앞두고 여느 기업들이 광고를 대폭 늘리는 시기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매출이 줄었다는 건 더 주목해볼 만한 사건인 셈입니다. 트위터는 떠나간 광고주들을 붙잡기 위해 무료 광고를 제공하는 1+1 행사를 하기도 하고, 그동안 금지한 정치 광고를 허용하고, 사이트 내 광고 위치에 대한 기업들의 재량권을 확대했는데요. 과연 기업들이 신뢰가 바닥인 트위터와 손을 잡을지는 모르겠네요.
뜻밖의 링크드인 유행
계속되는 대규모 해고에 새로운 유행도 생겼습니다. 바로 ‘링크드인에 해고 포스트 남기기’인데요. 자신을 자른 회사에 고맙다는 인사와 아쉬움을 담은 글을 남기는 거죠. 나를 부당하게 해고한 회사에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 이 당당한 자세는 위기 대응 능력을 드러내는 전략적인 방법이에요. 갑작스러운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유능한 직원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또 자신이 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본사를 둔 마케팅 서비스 회사 하이퍼소셜(HyperSocial)의 CEO인 브레이든 월레이크(Braden Wallake)의 링크드인 포스트. @bradenwallake
한편, 근로자가 아닌 고용자가 해고 포스트를 남겨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마케팅 서비스 회사 ‘하이퍼소셜’의 CEO 브레이든 월락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지난 9일에 직원 17명 중 2명을 해고했어요. 월락은 관련 내용을 포스팅 하며, 이렇게 썼죠. “오늘 같은 날엔 내가 돈만 추구하고 직원들한테 상처 주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오너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며 “세상의 모든 CEO가 냉정하지만은 않으며 직원을 마음대로 해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아줬으면 한다”고요. 끝으로 “직원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오늘보다 더 슬픈 날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눈물 셀카 사진….
브레이든이 의도한 바와는 달리, 이 포스트엔 부정적 반응이 뒤따랐어요. 대부분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었죠. 하지만 사장이 죄책감을 느낀다는 게시물을 이렇게까지 욕할 일이냐는 옹호 반응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
미시간 주에 일어난 새 돌풍
다행스러운 건, 이번 바람이 2000년도에 일어난 ‘닷컴 버블’ 사건과는 다른 결이라는 겁니다. 그때에도 IT 붐이 과하게 일어나며 한번에 거품이 꺼지는 현상이 일어났죠. 그러나 지금은 그때처럼 막막한 상황은 아니에요. 인력데이터 업체 레벨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해고된 근로자의 70% 이상이 3개월 이내에 새 일자리를 찾았고, 절반 이상이 전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직장을 구했다고 합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다음 일자리를 금방 찾는 직업군이에요. 여전히 기술인력을 채용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죠. 다만 그들에게 익숙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은 아닙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보험과 은행, 의료, 소매 부문의 기업에서 엔지니어를 채용하려는 수요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 기업들은 미시간 주에 많이 모여 있어요. 그래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엔지니어 인력이 미시간 주로 자연스럽게 분배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미시간 주가 제 2의 실리콘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있는데요. 원격 근무 허용과 임금 수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인력의 이동이 일어날 것 같네요.
애플이 태풍에 안전한 이유
이 와중 애플은 별다른 발표가 없습니다. 대규모 감원에 있어서 말이에요. 그래서 애플을 무풍지대라고도 부릅니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대규모 감원에 있어서 안전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꼽습니다. 1.코로나 19 대유행 기간 동안 무리하게 직원을 늘리지 않아서. 2.직원들에게 공짜 점심을 제공하지 않아서.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최근 감원에 나선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지난 2년 간 너무 많은 직원을 고용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팬데믹으로 디지털 서비스 수요가 높아진 배경이 있었죠. 예를 들어 아마존의 경우 코로나 19 유행이 본격 시작된 2020년에만 해도 50만 명의 직원을 채용하며 직원 수가 전년대비 38% 늘었어요. 2021년에는 추가적으로 31만개 일자리를 만들었죠. 메타, 구글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팬데믹 기간이 끝나며,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중심으로 활동을 재개하자 이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겁니다.
하지만 애플은 달랐습니다. 직원 수를 갑자기 늘리지 않았고, 2020년엔 7천명 미만의 인력을 고용하며 전년과 비슷한 규모로 조직을 운영했습니다. 딱 필요에 따라서만 직원을 고용했기에 갑작스러운 해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또 빅테크 기업들의 이번 대규모 감원과 함께 생긴 변화가 하나 있는데요. 복지 혜택의 축소입니다. 알다시피 구글과 메타는 구성원들에게 최상급 복지를 제공하기로 유명한데요. 갑작스럽게 내부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자, 인력 감축과 함께 복지 축소가 이뤄졌습니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 순다르 피차이는 복지 정책 축소에 대한 우려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재미를 돈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애플에는 애초에 공짜 점심이 없었습니다. 구성원들에게 많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곧 조직을 잘 운영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거든요. 회사의 재정을 어떻게 배분해 써야할지 면밀히 파악해 사용해왔습니다. 어떤 분은 애플의 최고 경영자 팀쿡을 두고 ‘오퍼레이션 요리사’라고 하더군요.
실리콘벨리에서 일어나는 해고 바람의 모든 것을 담아봤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남 이야기듯 볼 수만은 없을 텐데요. 혹시라도 관련 직종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이신 분들은 꼭! 태풍이 일으키는 긍정적인 면을 취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