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끝나 가네요. 인사 담당자들에게 1년은 왠지 더 빠르게 흐를 것 같아요. 특정 시기마다 해야 할 굵직한 이슈들이 있잖아요. 채용, 교육, 평가, 보상・・・. 내년이 성큼 찾아오면 또 이 큼직하고 중요한 업무가 반복될 테죠. 이 글을 찾아 읽으시는 분이라면, 이 업무들을 마냥 기계적으로 하기보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이끄는 분일 거예요.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성취를 느끼고.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기업을 키우는 일에 가치를 느끼는 분이겠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HR 트렌드 갈무리!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동안 여기저기 떠돌던 이야기를 한 데 모아둔 글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시작합니다!
고용 안정성보다 조직 문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그러니까 한 6~7년 전만 해도 주변에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가지 않고 9급 공무원이 된 친구들도 있었고, 몇수를 거듭해 5급 공무원을 준비하다가 7급, 9급으로 낮춰 시험을 보는 언니 오빠들도 있었죠. 그 후로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공무원 지원자가 날이 갈수록 최저를 기록하는 데다가, 젊은 층의 퇴사율이 높다고 해요. 재직 기간 5년이 안 된 퇴직자가 1만명을 넘어섰대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연공 서열에 맞춘 상명하복 식 조직문화와 사기업에 낮은 임금 수준과 그에 반해 높은 업무 강도를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무원이라는 직업과 조직 특성에 따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원자들이 직장을 고를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볼 수 있는 근거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20~40대 절반 “연봉 줄어도 조직문화 맞으면 이직”… 휴가 최우선” 기사 중 일부 캡처
최근 동아일보의 한 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은 기업 내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퇴사를 고민하거나 실제 실행에 옮겼다고 해요. 이 설문은 20~40대 직장인이나 취준생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고 하는데요. 이 결과에서 흥미로운 점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하는 사람으로 ‘최고 경영자’를 꼽았다는 거예요.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많이 접촉할 일이 없지만, 조직문화를 선두하고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거죠. 실제로 Z세대가 어느 기업에 호감을 갖게 되는 배경 중 하나는 ‘기업의 대표가 진정성을 보여줄 때’라고 하죠. 요즘엔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한때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운영한 덕에 Z세대에게 신세계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만 봐도 그렇습니다. 특정 기업을 낮게 평가하는 재직자 리뷰들을 살펴 보면, ‘경영진의 무능’을 꼽는 경우가 많아요. OKR을 실행하고, 애자일 조직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결국 경영진이 어떤 태도로 기업을 이끄느냐에 따라 조직문화가 달라진다는 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리 애써봐야 소용 없구나’ 하고 자조하진 마세요. 경영진을 설득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을 HR팀이 해낼 수 있을지 몰라요. 누구보다 우리 조직 자체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팀이 HR 팀이니까요.
자율성이 높을수록 올라가는 일의 능률
‘자기만의 삶’, ‘자기만의 길’ 이런 말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전 세대를 막론하고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자아실현이 주 키워드로 자리하는 이 시대엔 그 움직임이 더 적극적인 것 같아요. 참 신기한 현상이에요. 뉴스에서는 구인난이라고들 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라는 게 말이에요. 얼마나 일에 대한 관심이 높은지, 올해는 일로 자아실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서적 여럿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기도 했어요.
위 책의 저자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에요. 일을 좋아하는 만큼 일에 매몰된 적도 많았대요. 힘든 줄도 모르고 마냥 몰입한 거죠. 그러다 보니 일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찾고 발견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도 거쳤다고 합니다. 때론 번아웃도 겪고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들이 내린 결론은,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더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나가려는 의지가 충분하다는 것. 일에 진심인 저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류는, 두 가지 중 한 쪽일 것 같아요. 1) 자기도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이거나 2) 일을 좋아하고 싶어하는 사람 이거나. 어느 쪽이 됐든간에, 오롯이 일의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는 욕구는 분명해 보입니다.
‘덕업일치’가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도 비슷한 맥락 같아요. 말 그대로 ‘덕후질과 본업을 일치시킨다’는 뜻인데요.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성과도 좋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능률을 높여주니까요. 포켓몬 빵의 인기를 갈아치운 연세크림빵, 들어보셨나요? CU편의점의 PB상품인 이 빵을 기획하고 만든 담당 MD도 덕업일치의 주인공이에요. 나이는 96년생, 입사 8개월 차 MD인데요. 대학 시절에 도서관에서 빵만 먹었을 정도로 엄청난 빵순이였대요. 그러다가 MD로 입사해, 제품개발팀에 발령 받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보니 이 연세크림빵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해요.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면서 전국팔도의 빵집은 거의 다 돌아봤다고 하네요. 누군가는 ‘어떻게 전국을 돌 생각을 하냐’고 할 수 있지만, 본인에겐 너무 즐거운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례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조직문화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에게 회사의 상품 기획부터 개발까지 리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다니. 이 MD가 일하는 과정을 오롯이 즐기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건강한 자율성에서 비롯한 게 아닐까요?
MZ 세대의 일과 문화를 말하는 자기계발 유튜버 드로우앤드류도 그런 경험을 말했어요. 예전에 한 기업에 디자이너로 있을 때 경험이었는데요. 그 당시 회사가 크지 않아서 디자이너가 자기 혼자 유일한 데다가, 월급도 적게 받았는데 일하는 내내 너무 행복했대요. 지금까지 커리어 중 가장 오래 근무한 곳으로 손꼽을 정도로요. 상품 기획부터 개발, 판매까지 오롯이 본인의 몫이었지만 거기서 비롯한 부담감은 스스로 무언가를 일궈 성과를 낸다는 것에 쾌감에 비할 바가 안 됐다고 해요.
▲ 유튜브 ‘드로우앤드류’ 채널 ‘MZ 세대가 퇴사하는 진짜 이유’ 영상 캡처 (6:45~8:00까지 보세요!)
일한 만큼 원하는 대가
그런데 위 이야기들을 통해 ‘그럼 MZ세대는 돈이 중요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 오해예요.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인사이트 보고서 <Z세대가 생각하는 일의 진짜 의미>에 따르면 Z세대가 직장 선택시 고려하는 요소 중 Top 1은 다름 아닌 ‘연봉’이었어요. 이건 여느 세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럼에도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Z세대가 직장 선택 시 중요한 조건에 연봉을 두었습니다. Z세대의 무려 59.6%나 연봉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니까요.
그럼 또 극단적으로 이들이 돈을 밝히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다만 자신의 노동에 있어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드러난 거예요. 자신의 능력과 기여를 올바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것이죠. 금융 치료가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될 수는 없지만, 보상의 방식에서 제외될 이유도 없어요.
물론 연봉은 인사 담당자의 뜻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정당한 보상 시스템을 설계할 수는 있잖아요. 금전적 보상으로 잇기 어렵다면, 시간적 보상이나 권한 확대를 줄 수도 있고요. 분명히 고려해야 할 점은 '내가 일한만큼 인정 받고 있는가’, 하는 충족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