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찾은 탁월한 팀의 모습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새삼 팀 스포츠의 가치를 느꼈어요. 선수 개인의 역량보다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성취를 이루는 과정은 너무 아름다워요. 그래서 우리는 결과가 어떻든, 과정에 최선을 다한 팀에게 박수를 치는 것 같아요.
아직 월드컵이 개막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이변이 많이 일어났어요. 일본이 독일을 이기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꺾고, 대한민국 대 우루과이 전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독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이 세 국가는 모두 월드컵 우승 후보로 꼽힐 정도로 축구 강국인데요. 아무도 우승 후보로 주목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 세계에 크게 한 방 날린 거예요.
저는 이 현상에서 훌륭한 ‘팀’의 진가를 봤어요. 이번 월드컵 세 경기를 통해 개인의 뛰어난 포트폴리오가 아닌 탁월한 팀의 승리를 이야기해 봐요.
사우디아라비아, 한마음으로 몰입한 팀
첫 사례부터 충격입니다. 중동의 모래바람이 아르헨티나를 덮쳤어요.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우승 예상 0순위 팀인데요. 그런 아르헨티나를 사우디아라비아가 2:1로 이겼습니다. 특히 이번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시 잡기 전이었다는 평가가 많을 정도로 축구의 왕 메시를 꼼짝 못 하게 한 경기였어요.
이번 결과가 고도화된 오프사이드 판정 시스템 덕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전반전에 선제골을 넣은 뒤로 세 골이나 넣었지만, AI 판정에 의해 모두 오프사이드 처리가 되고 말았거든요. 그러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승리가 우연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경기를 통해 저력을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팀의 승리 포인트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골키퍼를 포함한 수비수들의 촘촘한 방어, 공격수의 뛰어난 역량, 승리를 향해 하나로 뭉친 마음.
아르헨티나에는 메시뿐만 아니라 뛰어난 공격수가 많은데요. 이번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유효 슛은 15개에 달할 정도였어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유효 슛은 고작 2슛에 불과해요.) 그래서 전반전 거의 시작하자마자 골이 나왔고요. 이후에도 고작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유효 슛이 나왔습니다. 영상을 보면 전반전에 아르헨티나가 얼마나 무섭게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해 오는지 보여요. 그 공격에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방어선이 뚫리죠.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이 후반전엔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바로 위 영상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전반전이 끝난 후 사우디 팀의 감독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태도를 지적하는 장면이에요. 그는 아르헨티나 선수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우디 선수들을 각성시키죠. 그리고 말해요.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요.
그러자 후반전에서 선수들은 달라졌습니다. 망설이지 않아요. 상대보다 더 빨리 몸을 움직여 뛰고, 공이 떨어질 곳을 계산해 미리 그 자리에 가서 킥을 준비하죠. 중요한 건 어느 선수 혼자 뛰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든 선수가 각 자리에 맞게 뛰어가는데, 거대한 그물망이 펼쳐지는 것 같아요. (와, 이건 영상을 꼭 한 번 보셔야 해요.) 특히 골키퍼의 집중력은 대단합니다. 무함마드 우와이스의 눈은 단 한순간도 공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이렇게 수비가 완벽하니, 아르헨티나 팀은 조급해진 듯합니다. 후반전에선 아르헨티나 팀의 당황한 마음이 경기에서 느껴지더라고요. 상대가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 공격수들이 공을 때려 넣었어요. 저는 이 모든 광경이 댄스 그룹의 무대 같았습니다. 선수들이 각자의 자리에 집중해 몸을 움직이는 게 여실히 느껴졌거든요. 이 환상적인 팀워크를 보고 분명히 깨달았어요. 한마음이 된 팀은 죽기 살기로 싸운다는 것을요. 그리고, 한마음이 된 팀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요.
일본, 국가가 일궈낸 팀의 성과
저는 조직의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의 경기력을 통해 다시 느꼈습니다. 이번 일본과 독일의 경기 결과가 독일의 몰락으로 거론되지만, 사실 일본의 혁신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참 신기하게도 일본과 독일의 축구계는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요. 전개 양상은 전혀 다릅니다. 세대교체를 대하는 자세가 그래요.
독일은 지금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중인데요. 이런 상황을 두고 얼마 전 KBS 축구대토론 프로그램에서 구자철 해설 위원은 이렇게 말을 했어요. “독일은 세대교체가 반쯤 이뤄졌는데 완벽하게 이뤄졌다곤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세대교체를 안 했다고 할 수도 없어요. (이번 월드컵이) 독일의, 어떻게 보면 몰락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면 현재 독일 선수들 기량이 떨어지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월드컵 최종 공격수에 발탁된 선수들은 첼시, 바이에른 뮌헨, 베르더 브레멘에 소속돼 활동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죠. 연령대도 1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하고요. 다만 전문가들은 토마스 뮐러와 같은 기존 베테랑 선수들이 새로운 선수들을 지원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요. 경기장에서 젊은 선수들이 놓치는 부분을 커버해 주고 이끌어줘야 하는데, 그의 기량이 받쳐주지 못하다는 거죠.
반면 일본은 축구 세대 교체를 2005년부터 준비해왔어요. ‘일본의 길(Japan’s Wa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인데요. ‘일본의 길’은 대표팀 강화부터 유소년 육성, 지도자 양성, 축구 문화 보급까지 총 4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어요. 각 항목에 따른 세부적인 실천 방안도 포함됐어요. 각 포지션과 영역별로 추구하는 선수의 역량과 자원도 제시했고요. 또 시동기(5~8세), 성장기(9~12세), 도전기(13~17세), 성숙기(18~21세)에 따라 훈련법을 다르게 적용했어요. 일본 선수들의 약점중 하나로 지적돼 오던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피지컬 피트니스 프로그램도 강화했죠. 최종 목표도 아주 명확합니다. ‘2050년까지 축구 인구 1000만명 확보, 그리고 월드컵 우승.’
일본이 정말 2050년에 월드컵 우승을 거머쥘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일본 팀의 기량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역시 선수 개인의 노력과 투자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의 지원은 더 강한 에너지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조직의 힘 아닐까요?
대한민국, 훌륭한 리더의 뚝심
훌륭한 팀에는 탁월한 리더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우리 국가팀에게는 훌륭한 리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있어요. 벤투 감독은 역대 최장 기간 재임 감독인데요. 2018년부터 한국팀을 맡았으니, 4년이 넘었네요. 그동안 한국 감독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이 채 안 되는 수치를 보면, 네 배 이상의 기간 동안 팀을 이끌고 있는 셈이에요.
이렇게 한 감독이 오래 팀을 맡게 된 데에는 대한축구협회의 각성도 있습니다. 감독을 자주 바꿔 오던 시절, 감독들이 어쩔 수 없이 임기응변 식 코칭을 하는 것에 문제를 깨달았거든요. 실제로 2002년 월드컵부터 2018년 월드컵까지는 사령탑이 12번 바뀌었대요. 심지어 벤투 감독 직전 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전 감독은 2018 러시아 월드컵 감독 자리에 2017년 7월에 부임했어요.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대회를 준비해야 했던 거죠. 다행히 신 감독의 전술 덕에 독일을 2-0으로 이기는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 축구팀 자체를 성장 시키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제서야 대한축구협회는 팀이 강화 되려면 장기적인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벤투 감독은 이전 감독들보다 긴 호흡으로 대회를 준비했어요. 그는 처음부터 비슷한 경기 운영 방식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포백(four back) 수비를 바탕으로 후방에서부터 패스로 점유율을 높여 가는 빌드업 방식이죠. 이를 두고 주전 선수들의 변화가 크지 않는 데다가, 비슷한 경기를 펼치면 상대가 전술을 간파하기 쉽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벤투 감독은 딱 잘라 말했어요. 대표팀 소집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소집 때마다 전술을 바꾸면 팀의 호흡이 깨진다고요.
한 가지 전술이 한계를 갖고 있다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이유는, 그가 선수들 각자의 역량을 파악하는 데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벤투 감독의 의외성이 제일 잘 드러난 부분이, 후반전에 이강인 선수를 투입한 것이에요. 그는 가장 막내이자 왼발을 쓰는 이강인 선수를 넣은 이유에 대해 ‘본인이 필요한 순간에는 과감해지는 승부사 기질이 있다’고 평가했어요. 실제로 감독의 말대로 이강인 선수는 상대의 압박이 들어올 때 문제를 돌파하는 힘을 가진 선수예요. 선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감독이 있으니 다음 경기엔 어떤 전술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 월드컵 세 경기를 통해 살펴본 각 팀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한마음으로 몰입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의 투자와 의지로 성장을 이룬 일본, 뛰어난 감독의 리더십으로 단단해진 한국. 이 세 가지 특징 중 우리 조직은 어떤 모습에 가까운지 한 번 살펴보세요!